Bloodstream Sermon

달마대사 혈맥론(達磨大師血脈論) Bodhidharma

Bloodstream Sermon


1장  心外無佛性(심외무불성) - 마음밖의 불성은 없다 - No Buddha Outside of Mind.

三界混起,同歸一心,前佛後佛,以心傳心,不立文字。

삼계혼기, 동귀일심, 전불후불, 이심전심, 불입문자.

"삼계가 혼란스럽게 일어날지라도 모두 하나의 마음으로 돌아가고, 과거의 부처나 미래의 부처나 모두 마음으로 마음을 전하여 문자에 의지하지 않는다."

Everything that appears in the three realms (the present, the past, and the future) comes from one's mind. Hence, Buddhas of the past and future transmit mind to mind without letters.

若不立文字,以何為心?

약불입문자, 이하위심?

만약 문자를 세우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마음을 삼습니까?

But if they don't define it with letters, how do you express your mind?

汝問吾即是汝心,吾答汝即是吾心。

여문오즉시여심, 오답여즉시오심.

그대가 나에게 묻는 것이 곧 그대의 마음이고, 내가 그대에게 답하는 것이 곧 나의 마음이다.

You ask. That's your mind. I answer. That's my mind.

吾若無心因何解答汝?汝若無心因何解問吾?

오약무심인하해답여? 여약무심인하해문오?

나에게 만약 마음이 없다면, 어떻게 그대에게 답할 수 있겠으며, 그대에게 만약 마음이 없다면, 어떻게 나에게 물을 수 있겠는가?

If I had no mind how could I answer your question? If you had no mind, how could you ask me a question?

問吾即是汝心,從無始曠大劫以來,乃至施為運動一切時中,一切處所,皆是汝本心,皆是汝本佛。

문오즉시여심, 종무시광대겁이래, 내지시위운동일체시중, 일체처소, 개시여본심, 개시여본불.

나에게 묻는 것이 곧 그대의 마음이니, 시작 없는 아득한 과거로부터 움직이고 행동하는 것이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모두가 그대의 본래 마음이고, 모두가 그대의 본래 부처이다.

That which asks me is your mind. Through endless kalpas" without beginning, whatever you do, wherever you are, that's your real mind, that's your real buddha. 

即心是佛,亦復如是。

즉심시불, 역부여시.

마음이 바로 부처라는 말 역시 그와 같다.

This is the same as saying the mind is the Buddha.

除此心外,終無別佛可得;離此心外, 覓菩提涅槃, 無有是處。

제차심외, 종무별불가득; 이차심외, 멱보리열반, 무유시처.

이 마음을 제외하고 얻을 수 있는 다른 부처는 결코 없으며, 이 마음을 떠나 밖에서 깨달음과 열반을 찾을 수는 절대로 없다.

Without the mind, you'll never find another Buddha. To search for enlightenment or nirvana without the mind is impossible.

自性真實, 非因非果, 法即是心義

자성진여, 비인비과, 법즉시심의

스스로의 본성(本性)은 진실하여, 원인도 아니고 결과도 아니다. 법(法)은 곧 마음이다.

Your self-nature is always true to the core and stands alone, and it means it's not a part of a cause and an effect. It means your mind is the dharma, the nirvana.

自心是菩提 自心是涅槃 若言心外有佛及菩提可得 無有是處

자심시보리 자심시열반 약언심외유불급보리가득 무유시처

스스로의 마음이 바로 깨달음이며, 스스로의 마음이 바로 열반이니, 마음 밖에서 부처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Through your mind, you reach enlightenment, the nirvana; you cannot say you reach it from outside of your mind.

佛及菩提皆在何處?

불급보리개재하처

부처와 깨달음이 모두 어디에 있는가?

So where is Buddha and enlightenment?

譬如有人以手提虛空得否?

비유하자면 사람이 손으로 허공을 붙잡으려는 것과 같으니, 붙잡을 수가 있겠는가?

It's like a person trying to grab the air, emptiness, with his hand. Can he grab it?

虛空但有名,亦無相貌;取不得、捨不得,

허공은 다만 이름일 뿐이고, 형태가 없어서, 취할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다.

Emptiness is just a name, it has no form, it can neither be taken nor discarded.

是捉空不得。除此心外,見佛終不得也。

허공을 붙잡을 수 없는 것처럼, 이 마음을 없애고 밖에서 부처를 찾을 수는 결코 없다.

Just as emptiness cannot be grasped, mind cannot be gotten rid of, and Buddha cannot be found outside of mind.

佛是自心作得,因何離此心外覓佛?
부처란 스스로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인데, 어떻게 이 마음을 떠나 따로 부처를 찾을 것인가?

Buddha is created by one's own mind, so why should one look for Buddha outside of one's mind?

前佛後佛只言其心,

앞 부처와 뒷 부처가 다만 그 마음을 말할 뿐이다.

Buddhas of the past and future only speak their minds.

心即是佛,佛即是心;心外無佛,佛外無心。若言心外有佛,佛在何處?

심즉시불, 불즉시심; 심외무불, 불외무심. 약언심외유불, 불재하처?

마음이 곧 부처이고, 부처가 곧 마음이다.

마음 밖에 부처 없고, 부처 밖에 마음 없다.

만약 마음 밖에 부처가 있다고 한다면, 부처는 어디에 있는가?

The mind is the Buddha, and the Buddha is the mind; there is no Buddha outside the mind, and there is no mind outside the Buddha. If you say there is a Buddha outside the mind, where is the Buddha?

心外既無佛,何起佛見?遞相誑惑,不能了本心,被它無情物攝,無自由。若也不信,自誑無益。
심외기무불, 하기불견? 체상광혹, 불능료본심, 피타무정물섭, 무자유. 약야불신, 자광무익.

마음 밖에 이미 부처가 없는데, 왜 부처라는 견해를 일으켜서 서로 속이고 속는가? 본래 마음을 깨닫지 못하면, 저 무정물(無情物, 불상)에게 사로 잡혀서 자유로울 수 없다. 만약 믿지 않는다면, 스스로를 속일 뿐 이익이 없다.

Since there is no Buddha outside the mind, how can we have a Buddha in sight (in temples)? We deceive each other and cannot understand our original mind. We are controlled by other inanimate objects, buddha statues, and have no freedom. If we do not believe that there is no Buddha outside of one's own mind, it is useless to deceive ourselves.

佛無過患,眾生顛倒,不覺不知自心是佛。
불무과환, 중생전도, 불각불지자심시불.

부처에게는 허물이 없는데, 중생이 혼자서 모르고 있다. 자기 마음이 바로 곧 부처이라는것을.

The Buddha has no faults, but sentient beings are confused and unaware that their own mind is the Buddha.

若知自心是佛,不應心外覓佛。佛不度佛,將心覓佛不識佛。

약지자심시불, 불응심외멱불. 불부도불, 장심멱불불식불.

만약 자기의 마음이 바로 부처임을 안다면,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지 않을 것이니, 부처가 부처를 헤아리지는 않는다. 마음을 가지고 부처를 찾는다면, 부처를 알지 못한다.

If you know that your own mind is Buddha, you should not seek Buddha outside of your mind. Buddha does not save Buddhas, and if you seek Buddha with your mind, you will not know Buddha.

但是外覓佛者,盡是不識自心是佛。

그러나 밖에서 부처를 찾으려고만 하면, 모두 자기 마음이 바로 부처임을 알지 못하기때문이다.

However, those who seek Buddha outside of themselves do not recognize that their own mind is Buddha.

亦不得將佛禮佛,不得將心念佛。

또한 부처를 가지고 부처에게 절할 수는 없으며, 마음을 가지고 부처를 생각할 수는 없다.

You cannot worship Buddha with Buddha in you or think about Buddha while you have Buddha in your mind.

佛不誦經,佛不持戒,佛不犯戒,

부처는 경(經)을 외우지도 않고, 부처는 계(戒)를 지키지도 않고, 부처는 계를 범하지도 않는다.

Buddha does not recite sutras, Buddha does not observe precepts, Buddha does not break precepts,

佛無持犯,亦不造善惡。

부처는 지키고 범함이 없으며, 선(善)도 악(惡)도 짓지 않는다.

The Buddha does not violate any precepts, nor does he create good or evil.

若欲覓佛,須是見性,見性即是佛。

만약 부처를 찾고자 한다면, 반드시 본성을 보아야 하니, 본성이 곧 부처이다.

If you want to find Buddha, you must see your self-nature. Seeing your self-nature is Buddha.

若不見性,念佛誦經持齋持戒亦無益處。

만약 본성을 보지 못한다면, 염불(念佛)하고 경을 외우고, 재(齋)를 지내고, 계(戒)를 지킨다고 하여도 이익될 것이 없다.

If you do not see your self-nature, it will be of no benefit to chant the Buddha's name, recite scriptures, observe fasts and keep precepts.

念佛得因果,誦經得聰明,持戒得生天,布施得福報,覓佛終不得也。
염불하면 인과(因果)를 얻고, 경을 외우면 총명(聰明)을 얻고, 계를 지키면 하늘에 태어날 수 있고, 보시(布施)하면 복된 과보(果報)를 얻지만, 끝내 부처를 찾지는 못한다.

Chanting the Buddha's name will bring you cause and effect, reciting the scriptures will bring you wisdom, keeping the precepts will bring you rebirth in heaven, and giving alms will bring you blessings, but seeking the Buddha will never bring you any.

若自己不明了,須參善知識,了卻生死根本。若不見性,即不名善知識。

만약 스스로 밝게 깨닫지 못하면, 반드시 선지식(善知識)을 찾아서 생사(生死)의 근본을 밝혀내어야 한다. 만약 본성을 보지 못 한다면, 선지식이라고 할 수가 없다.

If you cannot attain enlightenment yourself, you must seek a dharma teacher who can help you to resolve the root of birth and death. If you do not see your self-nature, then you cannot be said to have attained prajnaparamita (반야지혜).

若不如此縱說得十二部經,亦不免生死輪迴,三界受苦,無出期時。

만약 이와 같지 못하면, 비록 12부경을 설명할 수 있더라도, 역시 생사윤회(生死輪廻)를 면하지 못할 것이고, 삼계(三界)에서 받는 고통을 벗어날 기약이 없을 것이다.

If one does not attain prajnaparamita (반야지혜), even if one can recite the twelve sutras, one cannot escape the cycle of birth and death and suffer in the three realms with no end in sight.

昔有善星比丘,誦得十二部經,猶自不免輪迴,緣為不見性。

善星既如此,今時人講得三五本經論以為佛法者,愚人也。

옛날 선성(善星) 비구는 12부경을 외울 줄 알았지만, 도리어 스스로는 윤회를 면하지 못했으니, 본성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성(善星)이 이미 그와 같았는데, 오늘날 사람들이 서너권의 경론(經論)을 강의할 수 있는 것으로 불법(佛法)이라고 여긴다면, 어리석은 사람이다.

In the past, there was a monk named Shanxing who recited twelve sutras but still could not escape reincarnation because he did not see his true nature.

Since Shanxing was like this, those who can talk about three or five sutras and treatises and think they are Buddhists are fools.

若不識得自心,誦得閑文書,都無用處。

만약 자기의 마음은 알지 못하면서 쓸데없는 글들만 외운다면, 아무 쓸모가 없을 것이다.

If you do not know your own mind, it is useless to recite idle texts.

若要覓佛,直須見性。性即是佛,佛即是自在人,無事無作人。

부처를 찾고자 한다면, 바로 본성을 보아야만 한다. 본성이 곧 부처이고, 부처는 곧 자재(自在)한 사람이며, 할 일이 없는 사람이고, 조작함이 없는 사람이다.

If you want to find Buddha, you must see your self-nature. Self-nature is Buddha, and Buddha is the free and able man, the man who has no more work and does nothing.

若不見性,終日茫茫,向外馳求,覓佛元來不得。

만약 본성을 보지 못하면, 종일 아득하고 어두워서 밖으로 쫓아 다니며 찾겠지만, 부처를 찾아 보아야 원래 부처는 찾을 수 없는 것이다.

If you don't see your self-nature, you will be in a state of confusion all day long, searching outside, but unable to find the Buddha.

雖無一物可得,若求會亦須參善知識,切須苦求,令心會解。
비록 얻을 수 있는 한 물건도 없지만, 아직 깨닫지를 못했다면, 역시 선지식 (善知識, 일체 이치를 요달한 불조<佛祖>의 혜명을 상속받은 분)을 찾아가 반드시 끈기 있게 공부해서 마음이 알아차리도록 해야 한다.
Although there is nothing to be gained, if one wishes to understand, one must consult a good teacher and strive hard so that the mind can understand.
生死事大,不得空過,
살고 죽는 일이 크니, 헛되이 시간을 보내서는 아니된다.

Life and death are serious matters, and should not be wasted.

自誑無益。

스스로를 속여 보아야 이로울 것이 없다.

There is no benefit in deceiving yourself.


縱有珍饈如山,眷屬如恆河沙,

開眼即見,合眼還見麼?

故知有為之法,如夢幻等。

비록 값진 보배가 산처럼 쌓여 있고, 일가 권속이 강의 모래알처럼 많더라도, 눈을 뜨면 보이지만, 눈을 감아도 보이는가 ?그러므로 유위(有爲)의 법은 꿈과 같고, 환상과 같음을 알아야 한다.

Even if one has delicacies as numerous as mountains and relatives as numerous as the sands of the Ganges,

If one opens his eyes, he can see them. But can he still see them when he closes his eyes?

若不急尋師,空過一生。

만약 급히 스승을 찾지 않는다면, 헛되이 일생을 보낼 것이다.

If you don't find a teacher quickly, your life will be wasted.

然即佛性自有,若不因師,終不明了。

不因師悟者,萬中希有。

그러므로 불성(佛性)은 자신에게 있지만, 스승을 말미암지 않는다면, 끝내 밝혀낼 수가 없다. 스승을 말미암지 않고 깨닫는 자는 매우 희귀하다.

The Buddha nature is within oneself, but without a teacher, it will never be understood. Those who can realize without a teacher are rare among ten thousand.

若自己以緣會合,得聖人意,即不用參善知識。
此即是生而知之,勝學也。

만약 자기 스스로 인연을 깨달아 성인(聖人)의 뜻을 얻는다면, 선지식을 찾을 필요가 없으니, 이런 사람은 곧 태어날 때부터 자질이 남다른 뛰어난 공부꾼이다.

If one can understand the meaning of the Buddha through the combination of fate, then there is no need to consult a good teacher. This is what is meant by knowing it innately, which is better than learning.

若未悟解,須勤苦參學,因教方得悟。

만약 아직 깨달아 알지 못했다면, 반드시 부지런히 끈기 있게 선지식을 찾아 배워야 하니,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깨달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If you have not yet understood, you must study diligently and only through following the teachings can you gain enlightenment.

若未悟了,不學亦得。不同迷人,

만약 스스로 밝게 깨닫는다면, 배우지 않아도 될 것이니, 어리석은 사람과는 같지가 않다.

不能分別皂白,妄言宣佛敕,謗佛忌法。如斯等類,說法如雨,盡是魔說,即非佛說。

흑백을 분별하지도 못하면서 망령된 말로써 불교를알린다면, 부처를 비방하고, 법을 헛되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무리는 법을 말하는 것이 내리는 빗물처럼 유창하더라도 모두가 마구니의 말일 뿐, 부처의 말은 아니다.

如斯等類,說法如雨,盡是魔說,即非佛說。

이와 같은 무리는 법을 말하는 것이 내리는 빗물처럼 유창하더라도 모두가 마구니의 말일 뿐, 부처의 말은 아니다.

師是魔王,弟子是魔民,迷人任它指揮,不覺墮生死海。

스승은 마구니의 왕이고, 제자는 마구니의 백성이니, 어리석은 사람이 저 백성을 떠맡아 이끌어 모르는 사이에 생사(生死)의 바다에 떨어진다.

但是不見性人,妄稱是佛。此等眾生,是大罪人,誑它一切眾生,令入魔界。

그저 본성을 보지 못한 사람이면서 망령되이 부처라고 자칭한다면, 이러한 중생은 죄가 큰 사람이니, 저 일체 중생을 속여서 마구니의 세계로 들어가게 하기 때문이다.

若不見性,說得十二部經教,盡是魔說。魔家眷屬,不是佛家弟子。

만약 본성을 보지 못하고서도 12부 경전의 가르침을 말한다면, 이것은 모두 마구니의 말이며, 마구니 집안의 권속이지, 불법의 제자는 아니다.

既不辨皂白,憑何免生死。

이미 흑백을 구분히 못하는데, 무엇에 의지하여 생사를 면할 것인가?

若見性即是佛,不見性即是眾生。

만약 본성을 본다면 곧 부처이고, 본성을 보지 못하면 곧 중생이다.

若離眾生性,別有佛性可得者,佛今在何處?

만약 중생의 본성을 떠나서 따로 얻을 불성(佛性)이 있다면, 부처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即眾生性,即是佛性也。性外無佛,佛即是性;

중생의 본성이 곧 불성이다. 본성 밖에 부처가 없고, 부처가 곧 본성이다.

除此性外,無佛可得,佛外無性可得。

본성을 제외하고는 얻을 부처가 없고, 부처를 제외하고는 얻을 본성이 없다.


제2장  迷心萬行 未免輪回(미심만행 미면윤회)

- 미한 마음으로 만행을 해도 윤회는 면치 못한다


若不見性,念佛誦經布施持戒精進,廣興福利,得成佛否?

만약 본성을 보지 않더라도, 염불하고, 경을 외우고, 보시하고, 계를 지키고, 정진(精進)하고, 널리 복되고 이로운 일을 한다면, 성불(成佛)할 수 있습니까?

不得.

성불할 수 없다.

因何不得?

어찌하여 성불할 수 없습니까?

有少法可得,是有為法,是因果、是受報、是輪迴法

얻을 수 있는 조그마한 법이라도 있다면, 이것은 유위법(有爲法)이고, 인과법(因果法)으로서, 과보(果報)를 받는 것이니, 곧 윤회(輪廻)하는 법이다.

不免生死,何時得成佛道。成佛須是見性。

생사(生死)를 벗어나지 못하고서, 어느 때에 불도(佛道)를 이룰 수 있겠는가? 성불이란 모름지기 본성을 보는 것이다.

If we cannot escape birth and death, when will we ever attain Buddhahood? Becoming Buddha means seeing one's true nature.


若不見性,因果等語,是外道法。


만약 본성을 보지 않으면, 인과(因果) 등의 말들은 외도(外道)의 법이다.

若是佛不習外道法。

만약 부처라면, 외도법(外道法)을 익히지 않는다.

佛是無業人,無因果,

부처는 업을 짓는 사람이 아니니, 부처에게는 인과(因果)가 없다.

但有少法可得,盡是謗佛,憑何得成。

다만 얻을 수 있는 조그만 법이라도 있기만 하면, 모두 부처를 비방하는 것이니, 어떻게 성불하겠는가?

但有住著一心一能一解一見,佛都不許。

하나의 마음(一心)에든, 하나의 능력(一能)에든, 하나의 이해(一解)에든, 하나의 견해(一見)에든, 머물기만 하면, 부처는 전혀 용납하지 않는다.

佛無持犯,

부처에게는 지키거나 범할 것이 없다.

心性本空,亦非垢淨

마음의 본성은 본래 공(空)이니, 역시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다.

諸法無修無證,無因無果。

모든 법은 닦을 것도 없고, 깨달을 것도 없고, 원인도 없고, 결과도 없다.

佛不持戒,佛不修善,佛不造惡,佛不精進,佛不懈怠,

부처는 계율을 지키지도 않고, 선(善)을 닦지도 않고, 악(惡)을 짓지도 않고, 정진(精進)하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다.

佛是無作人。但有住著心,見佛即不許也。

부처는 만드는 일이 없는 사람이니, 마음에 머물러 부처를 본다면, 용납되지 않는다.

佛不是佛,莫作佛解。

부처는 부처가 아니니, 부처라는 견해를 만들지 말라.

若不見此義,一切時中,一切處處,皆是不了本心。

만약 이러한 뜻을 알지 못한다면, 어느 때든 어느 곳에서든 결코 본래 마음을 깨닫지 못할 것이다.

若不見性,一切時中擬作無作想,是大罪人,是癡人,落無記空中;昏昏如醉人,不辨好惡。

만약 자성을 보지 못하고서, 언제나 ‘만드는 일이 없다’라는 생각을 만들려 한다면, 이것은 큰 죄인이고, 어리석은 사람이고, 무분별의 허공 속에 떨어져서 어둡기가 술취한 것과 같은 사람이어서 좋고 나쁨을 판별하지 못한다.

若擬修無作法,先須見性,然後息緣慮.

만약 만드는 일이 없는 법을 닦으려 한다면, 먼저 반드시 자기성품을 본 연후에야 반연하는 생각이 쉬어지는 것이다.

若不見性得成佛道,無有是處。

자성을 보지 못하고도 불도(佛道)를 이룰 수 있는 경우는 절대 없다.

有人撥無因果,熾然作惡業,妄言本空,作惡無過;

어떤 사람은 인과(因果)를 무시하고 마구 악업(惡業)을 짓고는, 망녕되이 말하기를 ‘본래 공(空)이니 악한 일을 해도 허물이 없다.’고 한다.

如此之人,墮無間黑暗地獄,永無出期。

이러한 사람은 무간흑암지옥(無間黑暗地獄)에 떨어져 영원토록 벗어날 기약이 없다.

若是智人,不應作如是見解。

만약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이와 같은 견해를 지어서는 안된다.

既若施為運動,一切時中皆是本心;色身無常之時,云何不見本心?

“이미 움직이고 동작함이 언제나 모두 본래 마음이라면, 육체가 무상(無常)할 때에 어떻게 본래 마음을 보지 못합니까?“

本心常現前,汝自不見

“본래 마음이 늘 앞에 드러나 있지만, 그대 스스로가 보지 못하는 것이다.“

心既見在,何故不見?

“마음이 이미 드러나 있는데, 무슨 까닭에 보지 못합니까?“

汝曾作夢否?

“그대는 꿈을 꾼 적이 없는가?“

曾作夢。

“꿈 꾼 적이 있습니다.“

汝作夢之時,是汝本身否?

“그대가 꿈을 꿀 때에, 그대의 본래 몸인가?“

是本身。 

“본래 몸입니다.“

汝言語施為運動與汝別不別?

“그대의 말과 움직임과 동작은 그대와 따로 있는가, 따로 있지 않는가?“

不別。

“따로 있지 않습니다.”

既若不別,即此身是汝本法身;即此法身是汝本心。

“이미 따로 있지 않다면, 곧 이 몸이 그대의 본래 법신(法身)이고, 이 법신이 그대의 본래 마음이다.

此心從無始曠大劫來,與如今不別;

이 마음은 헤아릴 수 없는 과거로부터 지금과 다르지 않아서, 생기거나 사라진 적이 없다.

未曾有生死,不生不滅。不增不減,不垢不淨,

생기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고, 증가하지도 않고, 감소하지도 않고,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고, 

好不惡,不來不去;亦無是非、亦無男女相、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고,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고, 옳고 그름도 없고, 남녀의 모습도 없고, 

不亦無僧俗老少、無聖無凡;亦無佛、亦無眾生、

승속(僧俗)과 노소(老少)도 없고, 성인(聖人)도 없고, 범부도 없고,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고, 

亦無修證、亦無因果、亦無筋力、亦無相貌;

닦아서 깨달음도 없고, 원인도 결과도 없고, 근력(筋力)도 없고, 용모(容貌)도 없다.

猶如虛空,取不得、捨不得,山河石壁不能為礙;

마치 허공과 같아서, 가질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고, 산이나 강이나 석벽(石壁)이 가로 막을 수도 없다. 

出沒往來,自在神通;

나타나고 사라지고 가고 옴에, 자재(自在)하고 신령스러이 통한다.

透五蘊山,渡生死河;一切業拘此法身不得。

오온(五蘊)의 산을 통과하고, 생사(生死)의 강을 건너니, 어떤 업(業)이라도 이 법신(法身)을 구속할 수 없다. 

此心微妙難見,此心不同色心,

이 마음은 미묘(微妙)하여 보기가 어려우니, 이 마음은 색심(色心)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此心是人皆欲得見。

이 마음이 곧 부처이니, 사람들은 모두 볼 수 있기를 바라지만, 

於此光明中運手動足者,如恆河沙,及乎問著,總道不得,猶如木人相似,

이 광명(光明) 속에서 손을 움직이고, 발을 움직이는 것이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물어 보면 전혀 말하지 못하는 것이 마치 나무로 만든 사람과 같다.

總是自己受用,因何不識?

모두가 스스로 받아서 사용하는데, 무슨 까닭에 알지 못하는가?

佛言一切眾生,盡是迷人,因此作業,墮生死河,欲出還沒,只為不見性。

부처가 말하기를 ‘모든 중생은 전부 어리석은 사람이다. 이 까닭에 업을 지어서 생사(生死)의 강에 떨어져 나오고자 하지만 도리어 잠겨 버리니, 단지 본성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眾生若不迷,因何問著其中事,無有一人得會者,自家運手動足因何不識?

중생이 만약 어리석지 않다면, 무슨 까닭으로 물어 보면 그 가운데 한 사람도 아는 사람이 없으며, 스스로 손을 움직이고 발을 움직이면서도 무슨 까닭에 알지 못하는가?

故知聖人語不錯,迷人自不會曉。

그러므로 성인의 말은 잘못됨이 없는데, 어리석은 사람이 스스로 깨달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故知此難明,惟佛一人能會此法;餘人天及眾生等,盡不明了。

그러므로 이것은 밝히기가 어려워서 오직 부처 한 사람만이 이 마음을 잘 알아차릴 뿐, 나머지 사람들과 하늘사람과 중생들은 전혀 밝게 깨닫지 못함을 알아야 한다.

若智慧明了,此心號名法性,亦名解脫。生死不拘,

만약 지혜가 이 마음을 밝게 깨달으면, 바야흐로 법성(法性)이라 이름하고, 또 해탈이라 이름 하니, 생사에 구속받지 않기 때문이다.

一切法拘它不得,是名大自在王如來;

모든 법이 그를 구속할 수 없으니, 일컬어 크게 자유로운 으뜸가는 여래[大自在王如來]라 하고,

亦名不思議,亦名聖體,

또 생각과 말로 하지 못한다[不思議, 부사의]고 하고, 또 성스러운 바탕[聖體, 성체]이라고 하고,

亦名長生不死,亦名大仙。

또 영원히 살아서 죽지 않는다[長生不死]고 하고, 또 큰 신선[大仙]이라 한다.

名雖不同,體即是一。聖人種種分別,皆不離自心。

이름은 비록 다르지만 바탕은 곧 하나이니, 성인(聖人)이 여러 가지로 분명한 것이 모두 자기의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

心量廣大,應用無窮,應眼見色,應耳聞聲,

마음의 크기는 광대하고, 응대하여 작용함은 끝이 없다. 눈에 응해서는 색을 보고, 귀에 응해서는 소리를 듣고, 

應鼻嗅香,應舌知味,乃至施為運動,皆是自心。

코에 응해서는 냄새를 맡고, 혀에 응해서는 맛을 알고, 나아가 움직이고 동작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이다.

一切時中但有語言道斷,即是自心。

언제나 말길이 끊어지기만 하면, 곧 자기 마음이다.

故云如來色無盡,智慧亦復然。

그러므로 말하기를 ‘여래의 색(色)은 다함이 없고, 지혜 역시 그러하다.’라고 하였다.

色無盡是自心,心識善能分別一切,乃至施為運用,皆是智慧。

색에 다함 없음이 곧 자기 마음이고, 마음인 의식이 모든 것을 잘 분별함과 나아가 움직이고 동작함이 모두 지혜이다. 

心無形相,智慧亦無盡。

마음은 모습이 없고, 지혜 역시 다함이 없다.

故云如來色無盡,智慧亦復然。

그러므로 말하기를 ‘여래의 색은 다함이 없고, 지혜 역시 그러하다.’고 한 것이다.

四大色身,即是煩惱,色身即有生滅,

사대색신(四大色身)이 곧 번뇌이니, 색신에는 생멸(生滅)이 있기 때문이다.

法身常住無所住,

법신은 언제나 머물러 있으니, 다시 머물 것은 없다.

如來法身常不變異故。

여래의 법신은 한결같아서 다르게 변하지 않는다.

經云:眾生應知,佛性本自有之。

그러므로 경(經)에서 말하기를, ‘중생은 불성이 본래 스스로에게 있음을 알아야 한다.’ 라고 하였다.

迦葉只是悟得本性,

가섭(迦葉)은 다만 본성(本性)을 깨달았을 뿐이다.

本性即是心,心即是性,性即此同諸佛心。

본성이 곧 마음이고, 마음이 곧 본성이다. 바로 이것이 모든 부처의 마음과 같다.

前佛後佛只傳此心,除此心外,無佛可得。

앞 부처와 뒷 부처가 다만 이 마음을 전하였을 뿐이다. 이 마음을 제외하고는 얻을 부처가 없다.

顛倒眾生不知自心是佛,向外馳求,終日忙忙;

뒤집힌 중생은 자기 마음이 곧 부처임을 알지 못하고, 밖으로 치달려 찾아서 하루 종일 바쁘다.

念佛禮佛,佛在何處?

염불(念佛)하고 예불(禮佛)하지만, 부처가 어디에 있는가?

不應作如是等見,但知自心,心外更無別佛。

이와 같은 견해를 지어서는 안된다. 단지 자기 마음만 알면, 마음 밖에 다시 다른 부처가 없다.

經云:凡所有相,皆是虛妄。又云:所在之處,即為有佛。

경(經)에서 말하기를 ‘무릇 모습 있는 것은 모두 허망(虛妄)하다.’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있는 그곳에 곧 부처가 있다.’ 고 하였다.

自心是佛,不應將佛禮佛;

但是有佛及菩薩相貌,忽爾見前,切不用禮敬。

자기 마음이 바로 부처이니 부처를 가지고 부처에게 절해서는 안된다.

부처와 보살의 모습이 문득 앞에 나타나더라도, 결코 절하고 공경할 필요가 없다.


我心空寂,本無如是相貌,若取相即是魔,盡落邪道。

나의 마음은 텅 비고 고요하니, 본래 그런 모습은 없다. 만약 모습을 취한다면 곧 마구니에게 포섭되니, 모두 사도(邪道)에 떨어진다.

若是幻從心起,即不用禮。

만약 (불상과 보살상이라는) 환상(幻想)이 마음에서 생긴다면, 절할 필요가 없다.

禮者不知,知者不禮,禮被魔攝。

절하는 자는 (진실을) 알지 못하고, (진실을) 아는 자는 절하지 않는다.

절 하는 것은 마구니에게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恐學人不知,故作是辨。

학인들이 이 사실을 알지 못할까봐 염려되어, 그 때문에 이렇게 판별하는 것이다.

諸佛如來本性體上,都無如是相貌,切須在意。

모든 부처와 여래와 본성(本性)의 바탕 위에는 전혀 이러한 (부처와 보살의) 모습이 없다는 것을 반드시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한다.

但有異境界切不用採括,亦莫生怕怖,不要疑惑,

다른 경계가 있더라도, 결코 붙잡아 취할 필요가 없고, 두려워하지도 말고, 의심할 필요도 없다.

我心本來清淨,何處有如許相貌。

나의 마음은 본래 청정하니, 어느 곳에 이와 같은 모습이 있겠는가?

乃至天龍夜叉鬼神帝釋梵王等相,亦不用心生敬重,亦莫怕懼;

나아가 천룡(天龍), 야차(夜叉), 귀신(鬼神), 제석천(帝釋天), 범천(梵天) 등의 모습에 대해서도, 또한 마음을 써서 공경하거나 귀중하게 여기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我心本來空寂,一切相貌皆是妄見,但莫取相。

나의 마음은 본래 텅 비고 고요하니, 모든 모습은 전부 허망한 모습이다. 그러므로 결코 모습을 붙잡지는 말라.

若起佛見法見,及佛菩薩等相貌,而生敬重,自墮眾生位中。

만약 부처라는 견해, 법이라는 견해를 내고, 부처라는 모습, 보살이라는 모습을 내어서, 공경하고 귀중하게 여긴다면, 스스로 중생의 처지 속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若欲直會,但莫取一切相即得,更無別語。

만약 진실로 알아차리고자 한다면, 다만 어떤 모습도 취하지 않으면 될 뿐, 달리 할 말은 없다.

故經云:凡所有相,皆是虛妄。都無定實,

그러므로 경에서 말하길 ‘무릇 있는 모습들은 모두 허망하다.'고 하였으니, 전혀 정해진 진실은 없는 것이다.

幻無定相。是無常法,

환상(幻相)에는 정해진 모습이 없으니, 이것이 곧 무상(無常)한 법이다.

但不取相,合它聖意。

단지 모습을 취하지 않기만 하면, 저 성인의 뜻과 합할 것이다.

故經云:離一切相,即名諸佛。

그러므로 경에서 말하기를 ‘모든 모습을 떠난 것을 모든 부처라고 일컫는다.’라 한 것이다.



제3장  明不敬所以(명불경소이) 공경치 말라는 이유를 밝히다

問曰:因何不得禮佛菩薩等?

"무엇 때문에 부처나 보살들에게 절하면 안됩니까?"

Question: Why can’t we worship Buddhas and Bodhisattvas?

答曰:天魔波旬阿修羅示見神通,皆作得菩薩相貌。種種變化,是外道,總不是佛。

“천마(天魔)와 파순(波旬)과 아수라(阿修羅)가 신통(神通)을 드러내어 모두 보살의 모습을 지을 수 있다. 여러 가지로 변화(變化)하는 것은 모두 외도(外道)이고, 결코 부처가 아니다.

The answer is: The demon Poxun and the Asura displayed their supernatural powers and all of them took on the appearance of Bodhisattvas. All kinds of changes are heretics, but they are not Buddhas.

佛是自心,莫錯禮拜。

부처는 자기 마음이니, 착각하여 절하지 말라.

Buddha is your own mind, so do not worship him wrongly.

佛是西國語,此土云覺性。覺者靈覺,

각(覺)이란 신령스럽게 깨어 있는 것이다.

應機接物,揚眉瞬目,運手動足,皆是自己靈覺之性。

기연(機緣)에 응하고, 사물을 대하며, 눈썹을 찡그리고, 눈을 깜빡이며, 손을 움직이고, 발을 움직이는 이 모든 것이, 자기의 신령스럽게 깨어 있는 본성이다.

性即是心,心即是佛,佛即是道,道即是禪。

본성이 곧 마음이고, 마음이 곧 부처이고, 부처가 곧 도(道)이고, 도가 곧 선(禪)이다.

Self-nature is the mind, the mind is the Buddha, the Buddha is the Tao, the Tao is Zen.

禪之一字,非凡聖所測。

선(禪)이라는 한 글자는 범부도 성인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다.”

The word "Zen" is beyond the comprehension of ordinary people and saints.

又云:見本性為禪。若不見本性,即非禪也。假使說得千經萬論,若不見本性,只是凡夫,非是佛法。

“본성을 보는 것이 선(禪)이다. 만약 본성을 보지 못하면, 선이 아니다. 설사 천 권의 경전과 만 권의 논서를 말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본성을 보지 못한다면, 다만 범부일 뿐, 불법(佛法)은 아니다.

It is also said: Seeing the original nature is Zen. If you do not see the original nature, it is not Zen. Even if you can recite thousands of sutras and treatises, if you do not see the original nature, you are just an ordinary person, not a Buddhist.

至道幽深,不可話會,典教憑何所及。
지극한 도는 그윽하고 깊어서 말로써는 알아차릴 수가 없으니, 경전의 가르침이 어떻게 미치겠는가?

但見本性,一字不識亦得。
단지 본성을 보기만 하면, 한 글자도 몰라도 된다.

見性即是佛,
자기 본성을 보는 것이 바로 부처이다.

聖體本來清淨,無有雜穢。
성스런 본바탕은 본래 청정하여 잡스런 때가 없다.

所有言說,皆是聖人從心起用。
있는 말들은 모두가 성인(聖人)이 마음에서 일으켜 사용하는 것이다.

用體本來空,

작용이니 본체니 하는 것은 본래 헛된 이름이다.

名言猶不及,十二部經憑何得及。

말로 미치지도 못하는데, 12부 경전으로 어떻게 미칠 수 있겠는가?

道本圓成,不用修證。

도(道)는 본래 원만하게 이루어져 있어서, 닦아서 증득(證得)할 필요가 없다.

道非聲色,微妙難見。
도는 소리와 색이 아니니, 미묘하여 보기가 어렵다.

如人飲水,冷暖自知,不可向人說也。

마치 사람이 물을 마셔서 차갑고 따듯함을 스스로 아는 것과 같아서, 남에게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唯有如來能知,餘人天等類,都不覺知。

오직 여래(如來)만이 알 수 있을 뿐, 나머지 사람이나 하늘사람 등의 부류는 전혀 깨달아 알지 못한다.

凡夫智不及,所以有執相。

범부의 지혜로는 미치지 못하니, 모습을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不了自心本來空寂,妄執相及一切法即墮外道。

자기의 마음이 본래 텅 비고 고요한 줄 알지 못하고, 망령되이 모습을 붙잡고, 일체법을 붙잡으면, 바로 외도(外道)에 떨어진다.

若知諸法從心生,不應有執,執即不知。

만약 모든 법이 마음으로부터 생겨남을 안다면, 붙잡지 말아야 하니, 붙잡으면 알지 못한다.

若見本性,十二部經總是閑文字。

만약 본성을 본다면, 12부 경전은 모두 부질없는 문자이다.

千經萬論只是明心,言下契會,教將何用?

천 가지 경전과 만 가지 논서가 다만 마음을 밝히는 것이니, 말끝에 계합(契合)하여 알아차리면, 가르침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至理絕言;教是語詞,實不是道。

지극한 도리는 말을 벗어났지만, 가르침은 말이니, 사실은 도(道)가 아니다.

道本無言,言說是妄。

도는 본래 말이 없고, 말은 허망한 것이다.


若夜夢見樓閣宮殿象馬之屬,及樹木叢林池亭如是等相;不得起一念樂著,盡是托之處,切須在意。

만약 밤에 꿈속에서 누각, 궁전, 코끼리, 말 등을 보거나, 나무, 수풀, 연못, 정자 등과 같은 모습들을 보더라도, 이러한 모습들에는 좋아하여 집착하는 한 생각도 낼 수가 없으니, 모두가 의탁하여 생기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臨終之時,不得取相,即得除障。

죽음이 다가왔을 때에 모습을 붙잡지 않을 수 있다면, 의심을 제거할 수 있다.

疑心瞥起,即魔攝。

마음이 잠깐이라도 일어나면, 곧 마구니에게 사로잡힌다.

法身本來清淨無受,

법신(法身)은 본래 청정하여 받을 것이 없다.

只緣迷故,不覺不知,因茲故妄受報。所以有樂著,不得自在。

다만 인연을 따라서 헤매기 때문에, 깨닫지 못하고 알 지 못하는 것이고, 이 때문에 망령되이 과보를 받는다.

그러므로 좋아하여 집착하게 되면, 자재할 수가 없다.

只今若悟得本來身心,即不染習。

지금 만약 깨닫는다면, 본래의 몸과 마음은 습기(習氣)에 물들지 않는다.

若從聖入凡,示見種種雜類,自為眾生,

만약 성인을 벗어나 범부로 들어가서 여러 가지 잡다한 것들을 드러내 보인다면, 스스로 중생이 되는 것이다.

故聖人逆順皆得自在,一切業拘它不得。聖成久.

그러므로 성인은 거스르는 경계에서든 순탄한 경계에서든 모두 자재할 수 있으니, 어떤 업도 그를 구속할 수 없어서 성스러움이 영원하다.

有大威德,一切品類業,被它聖人轉,天堂地獄無奈何它。
큰 위덕(威德)이 있는 모든 종류의 업(業)을 저 성인이 부리니, 천당과 지옥도 그를 어찌할 수가 없다.

凡夫神識昏昧,不同聖人,內外明徹。

범부는 정신과 의식이 어두우니, 성인이 안팎이 밝게 통하는 것과는 같지 않다.

若有疑即不作,作即流浪生死,後悔無相救處。

만일 의심이 있으면 행하지 않지만, 행하게 되면 생사의 바다 위에서 떠다니게 되어, 뒤에 후회하더라도 구해 줄 수가 없다.

貧窮困苦皆從妄想生,若了是心,遞相勸勉,但無作而作,即入如來知見。

가난과 고생이 모두 망상으로 말미암아 생기니, 만약 이 마음을 깨닫는다면, 서로서로 권고하여 다만 행함 없이 행한다면, 곧 여래의 지견으로 들어간다.

初發心人,神識總不定;
처음 발심한 사람은 정신과 의식이 전혀 안정되어 있지 않다.

若夢中頻見異境,輒不用疑,皆是自心起故,不從外來。

만약 꿈속에서 흔히 이상한 경계를 보더라도, 바로 의심할 필요는 없으니, 모두 자기의 마음이 일으킨 것이고, 밖에서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夢若見光明出現,過於日輪,即餘習頓盡,法界性見。

꿈에서 만약 밝음이 나타남을 보았는데, 태양보다도 더 밝다면, 곧 남은 습이 문득 없어지고, 법계(法界)의 본성이 나타나는 것이다.

若有此事,即是成道之因。唯自知,不可向人說。
만약 이러한 일이 있다면, 바로 도를 이루는 원인이지만, 오직 스스로가 알 뿐, 남에게는 말할 수 없다.

或靜園林中行住坐臥,眼見光明,或大或小,莫與人說,亦不得取,亦是自性光明。

혹시 고요한 숲 속에서, 가고 머물고 앉고 눕는 사이에 눈에서 밝음을 보는데, 작기도 하고 크기도 하다면, 남에게 말하지도 말고, 취하지도 말지니, 역시 자성(自性)의 밝음이다.

或夜靜暗中行住坐臥,眼睹光明,與晝無異,不得怪,並是自心欲明顯。

혹은 밤중에 조용한 어둠 속에서 가고 머물고 앉고 누움에, 눈에서 밝음을 보아 낮과 다름이 없다면, 괴이하게 여기지 말 것이니, 모두가 자기 마음이 밝게 드러나고자 하는 것이다.

或夜夢中見星月分明,亦自心諸緣欲息,亦不得向人說。

혹은 밤에 꿈속에서, 별이나 달을 또렷이 보더라도, 자기 마음이 여러 인연을 쉬고자 하는 것이니, 역시 남에게 말해서는 안된다.

夢若昏昏,猶如陰暗中行,亦是自心煩惱障重,亦自知。

꿈이 만약 어둡고 어두워서 마치 어두운 그늘 속을 가는 것과 같다면, 자기 마음에 번뇌의 장애가 두꺼운 것이니, 역시 스스로 알 수 있다.

若見本性,不用讀經念佛,
만약 본성을 본다면, 독경하고 염불할 필요가 없다.

廣學多知無益,神識轉昏。

널리 배우고 많이 알아보아야 이익될 것이 없고, 정신과 의식이 더욱 혼미하게 될 뿐이다.

設教只為標心;

가르침을 베푸는 것은 다만 마음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若識心,何用看教?

만약 마음을 안다면, 가르침을 살피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若從凡入聖,即須息業養神,隨分過日。

만약 범부를 빠져나와 성인으로 들어가려 한다면, 곧 업(業)을 쉬고 정신을 수양하면서 분수따라 시간을 보내야 한다.

若多瞋恚,令性轉與道相違,

만약 자주 성을 내거나 기뻐한다면, 본성을 돌려서 도와 서로 어긋나게 만들 것이다.

自賺無益。

스스로 이익을 보려 한다면, 이로울 것이 없다.

聖人於生死中,自在出沒,隱顯不定,

성인은 생사 속에서 자재하여, 나타나고 사라지고 숨고 드러남에 정해진 것이 없다.


一切業拘它不得。聖人破邪魔,

모든 업이 그를 구속할 수가 없으니, 성인은 삿된 마구니를 부순다.

一切眾生但見本性,餘習頓滅。神識不昧,須是直下便會,只在如今。

모든 중생이 본성을 보기만 하면, 남은 습이 문득 소멸하고, 정신과 의식이 어둡지 않아서, 바로 그 자리에서 즉각 알아차린다.

欲真會道,莫執一切法;

다만 지금 진실로 도를 알아차리고자 한다면, 어떠한 법에도 집착하지 말라.

息業養神,餘習亦盡。自然明白,不假用功。

업을 쉬고 정신을 수양하면, 남은 습도 역시 사라져서, 저절로 명백할 것이니, 힘써 공부할 필요가 없다.

外道不會佛意,用功最多;違背聖意,

외도(外道)는 부처의 뜻을 알지 못하고, 힘써 공부하는 것을 최고로 삼으니, 성인의 뜻과는 어긋난다.

終日驅驅念佛轉經,昏於神性,不免輪迴,

하루 종일 바쁘게 염불하고, 경전을 뒤져 보아야, 정신의 본성에는 어두워 윤회를 면하지 못한다.

佛是閑人,何用驅驅廣求名利,後時何用?

부처는 한가한 사람인데, 무엇 때문에 바삐 두루 명성과 이익을 찾겠는가? 나중에 어디에다 쓰겠는가?

但不見性人,讀經念佛,長學精進;六時行道,長坐不臥;廣學多聞,以為佛法。此等眾生,盡是謗佛法人。

본성을 보지 못한 사람은, 경을 읽고, 염불하고, 늘 배움에 열심히 공부하고, 하루 종일 도를 행하고, 

늘 배움에 앉아서 눕지 않고, 두루 배우고 많이 듣는 것을 불법으로 삼는다.

이러한 중생들은 모두가 불법을 비방하는 사람들이다.

前佛後佛,只言見性。

앞 부처와 뒷 부처가 다만 견성(見性)을 말할 뿐이다.


諸行無常。若不見性,妄言我得阿耨菩提,此是大罪人。

제행(諸行)은 무상(無常)이니, 만약 본성을 보지 못하고서 망령되이 ‘나는 무상정각(無上正覺)을 얻었다.’고 말한다면, 이 사람은 큰 죄인이다.

十大弟子阿難多聞中得第一,於佛無識只學多聞,

10인의 큰 제자 가운데, 아난(阿難)은 다문(多聞) 가운데 첫째였지만, 부처를 알지는 못하고, 다만 배워서 많이 알 뿐이었다.

二乘外道皆無識佛,識數修證,墮在因果中。

이승(二乘)과 외도(外道)는 모두 부처를 알지 못하고, 하나하나 닦아서 깨닫는다고 알고 있으니, 인과에 떨어져 중생의 업보를 받고 생사를 면하지 못한다.

是眾生業報,不免生死,遠背佛意,即是謗佛眾生,殺卻無罪過。

부처의 뜻에 위배되면 곧 부처를 비방하는 중생이니, 죽여도 도리어 죄나 허물이 없다.


經云:闡提人不生信心,殺卻無罪過。

경에서 말하기를 ‘천제인(闡提人)은 믿는 마음을 내지 않으니, 죽여도 도리어 죄나 허물이 없다.’라고 하였다.

若有信心,此人是佛位人。

만약 믿는 마음이 있다면, 이 사람은 부처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다.


若不見性,即不用取次

만약 본성을 보지 못한다면, 순서대로 나아가도 소용없다.

謗它良善,自賺無益。 善惡歷然,因果分明。

저 선량한 성인을 비방하고 스스로 이익을 보려 해도 이로울 것이 없으니, 선과 악이 또렷하고 원인과 결과가 분명하다. 

天堂地獄只在眼前,愚人不信,現墮黑暗地獄中;亦不覺不知,只緣業重故,所以不信。

천당과 지옥이 다만 눈앞에 있는데도, 어리석은 사람은 믿지 않고, 지금 깜깜한 지옥 속에 떨어져 있으면서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만 업이 무겁기 때문에 믿지 않는 것이다.

譬如無目人,不信道有光明,縱向伊說亦不信,只緣盲故,憑何辨得日光;愚人亦復如是。現今墮畜生雜類,誕在貧窮下賤,求生不得,求死不得。

마치 눈 없는 사람이 빛이 밝다는 말을 믿지 않는 것과 같으니, 비록 그에게 말해 주어도 믿지 못하는 것은, 다만 맹인(盲人)이기 때문이니, 어떻게 햇빛을 알 수 있겠는가? 어리석은 사람도 이와 같아서, 지금 축생의 잡류에 떨어져 있고, 빈궁하고, 하천(下賤)하게 태어나 있어서, 살고 싶어도 살 수가 없고,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다.

雖受是苦,直問著亦言我今快樂,不異天堂。

비록 이러한 고통을 받고 있으면서도, 바로 물으면 또한 말하기를 ‘나는 지금 즐거워서 천당에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한다.

故知一切眾生,生處為樂,亦不覺不知。

그러므로 모든 중생은 살아 있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기면서도,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음을 알겠다.

如斯惡人,只緣業障重故,所以不能發信心者,不自由它也。
이와 같이 악(惡)한 사람은 다만 업장이 무겁기 때문에, 신심(信心)을 낼 수가 없는 것이지, 다른 것 때문이 아니다.

若見自心是佛,不在剃除鬚髮,白衣亦是佛。若不見性,剃除鬚髮,亦是外道。

만약 자기 마음이 곧 부처임을 보면, 머리를 깎을 필요가 없으니, 세속인 또한 부처이다. 만약 본성을 보지 못하면, 머리를 깎아도 역시 외도이다.


제4장   道不在山野(도부재산야)

도는 승과 속인을 분별하지 않는다


問曰:白衣有妻子,婬欲不除,憑何得成佛?

“세속인은 처자가 있고, 음욕도 없애지 않는데, 어떻게 성불할 수 있습니까?”

答曰:只言見性不言婬欲。

“다만 견성(見性)을 말할 뿐, 음욕을 말하지는 않는다.

只為不見性;但得見性,婬欲本來空寂,自爾斷除,亦不樂著,

단지 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음욕이 문제가 되는 것이지, 견성하기만 하면 음욕은 본래 공적(空寂)하니, 끊어 없앨 필요도 없고, 즐겨 집착하지도 않는다.

縱有餘習,不能為害。

비록 남은 습기가 있더라도 해가 되지 않는다.

何以故?性本清淨故。

雖處在五蘊色身中,其性本來清淨,染污不得。

무엇 때문인가? 본성이 본래 깨끗하기 때문이다.

비록 오온(五蘊)의 색신(色身) 속에 있지만, 그 본성은 본래 깨끗하여 오염될 수가 없다.

法身本來無受,無飢無渴,無寒熱,無病,無恩愛,無眷屬,無苦樂,無好惡,無短長,無強弱,

법신(法身)은 본래 감각을 받아들임이 없어서, 배고픔도 없고, 목마름도 없고, 추움도 없고, 더움도 없고, 병도 없고, 사랑도 없고, 딸린 권속도 없고, 고통과 즐거움도 없고, 좋아함과 싫어함도 없고, 장점과 단점도 없고, 강함과 약함도 없다.

本來無有一物可得;

본래 얻을 수 있는 한 물건도 없다.

只緣執有此色身,因即有飢渴寒熱瘴病等相,

다만 이 색신(色身)이라는 원인에 집착하기 때문에, 배고픔, 갈증, 추움, 더움, 질병 등의 모습이 있는 것이다.

​若不執,即一任作。

만약 집착하지 않는다면, 마음대로 자재하게 행위하여라.

若於生死中得自在,轉一切法,與聖人神通自在無礙,無處不安。

만약 생사 속에서 자재(自在)를 얻어 일체법을 굴린다면, 성인과 같이 신령스러이 통하고 자재하고 막힘이 없어서 불안한 곳이 없을 것이다.

若心有疑,決定透一切境界不過。不作最好,

만약 마음에 의심이 있다면, 결코 어떤 경계도 뛰어넘지 못한다. 조작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作了不免輪迴生死。

조작하면 생사의 윤회를 면하지 못한다.

若見性,旃陀羅亦得成佛。

만약 본성을 본다면, 찬드라(candala; 도살업 등에 종사하는 최하층의 천민)도 역시 성불할 수 있다.“


제5장 屠漢亦得成道(도한역득성도)

백정도 도를 이룰 수 있다


問曰:旃陀羅殺生作業,如何得成佛?

“찬드라는 살생을 업으로 삼고 있는데 어떻게 성불할 수가 있습니까?”

答曰:只言見性不言作業。

단지 견성을 말할 뿐, 업 짓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縱作業不同,一切業拘不得。

비록 업 짓는 것이 어리석은 사람과 같지 않아도, 어떤 업도 그를 구속할 수가 없다.

​從無始曠大劫來,只為不見性,墮地獄中,

애초부터 다만 본성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지옥 속에 떨어진 것이다.

所以作業輪迴生死。

그러므로 업을 지어 생사에 윤회한다. 본성을 깨닫게 되면, 끝내 업을 짓지 않는다

從悟得本性,終不作業。若不見性,念佛免報不得,非論殺生命。

만약 본성을 보지 못하면, 염불해도 과보를 면하지 못하니, 생명을 살해하는 것까지 말할 것도 없다.

若見性疑心頓除,殺生命亦不奈它何。

만약 본성을 보면, 의심이 문득 사라지니, 생명을 죽인 것도 그를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自西天二十七祖,只是遞傳心印。吾今來此土,唯傳頓教大乘,即心是佛,不言持戒精進苦行。

인도의 27조사가 다만 차례차례 심인(心印)을 전했을 뿐이며, 나는 이제 이 땅에 와서 오직 돈교대승(頓敎大乘)의 즉심시불(卽心是佛)만을 전할 뿐, 지계(持戒)나 보시(布施)나 정진(精進)이나 고행(苦行)을 말하지는 않는다.

乃至入水火,登於劍輪,一食長坐不臥,盡是外道有為法。

나아가 물과 불 속에 들어가고, 칼을 꽂은 바퀴 위에 올라가고, 한 끼 밥만 먹고, 늘 앉아서 눕지 않는 것 등은 모두 외도의 유위법(有爲法)이다.

若識得施為運動靈覺之性,汝即諸佛心。

만약 행위와 동작의 신령스런 깨달음의 본성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 그대가 곧 모든 부처의 마음이다.

前佛後佛只言傳心,更無別法。

앞 부처와 뒷 부처가 단지 마음을 전한다고만 하였으니, 다시 다른 법은 없다.

若識此法,凡夫一字不識亦是佛。

若不識自己靈覺之性,假使身破如微塵,覓佛終不得也。

만약 이 법을 알아차리게 되면, 범부가 한 글자도 알지 못해도 역시 부처이지만, 만약 자기의 신령스런 깨달음의 본성을 알지 못하면, 설사 몸이 부서져서 가루가 되더라도 부처 찾는 일은 끝내 이룰 수 없다.

者亦名法身,亦名本心,

부처는 또 법신(法身)이라고도 하고, 본심(本心)이라고도 한다.

佛此心無形相,無因果,無筋骨,猶如虛空,取不得。不同質礙,不同外道。

이 마음에는 모습도 없고, 인과(因果)도 없고, 근육과 골격도 없고, 마치 허공과 같아서 붙잡을 수도 없고,물질과 같지 않고, 외도와 같지가 않다.

此心除如來一人能會,其餘眾生迷人不明了。

이 마음은 여래(如來) 한 사람만이 알 수 있을 뿐, 그 나머지 중생인 어리석은 사람들은 밝게 알 수가 없다.

此心不離四大色身中,

이 마음은 사대색신(四大色身, 흙 물 불 바람) 속을 벗어나지 않는다.

若離是心,即無能運動。

만약 이 마음을 벗어난다면, 움직일 수가 없다.

是身無知,如草木瓦礫。身是無性,因何運動。

이 몸에는 지각(知覺)이 없으니 마치 초목(草木)이나 기와조각 같고, 이 몸에는 정식(情識)이 없으니 무엇으로 말미암아 움직이겠는가?

若自心動,乃至語言施為運動,見聞覺知,皆是動心動用。

만약 자기 마음이 움직이면, 말하고 행동하고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들이, 모두 움직이는 마음이 움직여 작용함이다.

動是心動,動即其用。

움직이는 것은 마음의 움직임이니, 움직임이 바로 그 작용이다.

動用外無心,心外無動。

움직여 작용함 밖에 마음이 없고, 마음 밖에 움직임이 없다.

動不是心,心不是動。

움직임은 마음이 아니고, 마음은 움직임이 아니다.

動本無心,心本無動。

움직임에는 본래 마음이 없고, 마음에는 본래 움직임이 없다.

動不離心,心不離動。

움직임은 마음을 떠나지 않고, 마음은 움직임을 떠나지 않는다.

動無心離,心無動離,

움직임에는 마음이 떠나지 않고, 마음에는 움직임이 떠나지 않는다.

動是心用,用是心動。

動即心用,用即心動。

不動不用,

움직임은 마음의 작용이고, 작용은 마음의 움직임이다. 

움직이면 마음이 작용하고, 작용하면 마음이 움직이니, 

움직이지 않으면 작용하지도 않는다.

用體本空。空本無動,

動用同心,心本無動。

작용의 바탕은 본래 공(空)인데, 공은 본래 움직임이 없다. 

움직임과 작용은 마음과 같지만, 마음에는 본래 움직임이 없다.

故經云:動而無所動,

그러므로 경에서 말하길 ‘움직이니 또 움직일 것은 없다’고 한 것이다.

終日去來而未曾去,終日見而未曾見,

終日笑而未曾笑,終日聞而未曾聞,

終日知而未曾知,終日喜而未曾喜,

終日行而未曾行,終日住而未曾住。

이 까닭에 종일 왔다갔다하지만 한 번도 왔다갔다한 적이 없으며, 

종일 보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며,

종일 웃지만 한 번도 웃은 적이 없으며, 

종일 듣지만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으며, 

종일 알지만 한 번도 안 적이 없으며, 

종일 기뻐하지만 한 번도 기뻤던 적이 없으며, 

종일 다니지만 한 번도 다닌 적이 없으며, 

종일 머물지만 한 번도 머문 적이 없다.

故經云:言語道斷,心行處滅,

그러므로 경에서 말하길, ‘언어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이 가는 곳이 사라졌다’고 한다.

見聞覺知,本自圓寂。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이 본래 두루 고요하다.

乃至瞋喜痛癢何異木人,只緣推尋痛癢不可得。

나아가 성내고 기쁘고 아픈 것이 나무 인형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다만 아픔을 찾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故經云:惡業即得苦報,善業即有善報,

그러므로 경에서 말하길 ‘악업(惡業)은 고통스런 과보를 가져오고, 선업(善業)에는 좋은 과보가 있다.

不但瞋墮地獄,喜即生天。

성을 내면 지옥에 떨어질 뿐만 아니라, 

기뻐하면 하늘에 태어난다’고 한 것이다.

若知瞋喜性空,但不執即業脫。

만약 성냄과 기쁨의 본성이 공(空)임을 알아서 

집착하지 않기만 하면, 모든 업(業)에서 해탈한다.

若不見性,講經決無憑,

만약 본성을 보지 못하고 경전을 읽는다면, 결정코 의지할 것이 없다.

說亦無盡。略標邪正如是,不及一二也。​

말을 하려면 끝이 없으니, 간략히 삿됨과 바름을 드러낸 것이 이와 같지만, 한 두 가지에도 미치지 못한다.

頌曰

心心心難可尋,寬時遍法界,窄也不容針。我本求心不求佛,了知三界空無物。若欲求佛但求心,只這心這心是佛。我本求心心自持,求心不得待心知。佛性不從心外得,心生便是罪生時。

偈曰

吾本來此土。  傳法救迷情。

一華開五葉。  結果自然成。


達摩大師血脈論終


頌曰 (송왈)

心心心難可尋,寬時遍法界,窄也不容針。

심심심난가심,관시편법계,착야불용침。

마음 마음 하지만 마음은 찾기가 어려우니, 넓을 때에는 법계(法界)에 두루하고, 좁을 때에는 바늘도 들어갈 틈이 없다.

我本求心不求佛,了知三界空無物。

아본구심불구불,료지삼계공무물。

나는 본래 마음을 찾고 부처를 찾지 않으니 삼계(三界)가 비어서 물건이 없음을 밝게 안다.

若欲求佛但求心,只這心這心是佛。

약욕구불단구심,지저심저심시불。

만약 부처를 찾고자 한다면 다만 마음을 찾을지니, 단지 이 마음, 마음 하는 마음이, 곧 부처이다.

我本求心心自持,求心不得待心知。

아본구심심자지,구심불득대심지。

나는 본래 마음을 찾았으나, 마음은 스스로 가지고 있는 것이라 마음을 찾아도 마음을 기다릴 수는 없음을 안다.

佛性不從心外得,心生便是罪生時。

불성불종심외득,심생편시죄생시。

불성은 마음 밖에서 얻을 수 없으니, 마음이 생기면 곧 죄가 생기는 때이다. 


偈曰 (혜가대사께 전한 전법게)

吾本來此土。 傳法救迷情。

오본래차토。 전법구미정。

나는 본래 이 땅에 와서, 법을 전하여 미혹한 중생을 구하려 했다.

一華開五葉。 結果自然成。

일화개오엽。 결과자연성。

하나의 꽃에 다섯 잎이 열리니,

열매 맺는 것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 달마대사 혈맥론 정리 마침 - 



17.

偈曰 (혜가대사께 전한 전법게)


나는 본래 이 땅에 와서, 법을 전하여 미혹한 중생을 구하려 했다.


하나의 꽃에 다섯 잎이 열리니, 열매 맺는 것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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