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怒, Anger)

화(怒, Anger)를 내는것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이다. 화(怒)를 내지 않는 것은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데 꼭 필요한 마음 가짐이다.

Getting angry is a very serious problem. Not getting angry is a mindset that is absolutely necessary to living a happy life.

'화(怒)를 내지않는것'을 사람이 일생동안 삶의 목표로 삼을수 있을정도로 중요하기도 하다. 화를 내지않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It is so important that people can make 'not getting angry' a lifelong goal. It takes a lot of courage to not get angry.

세상사람들은 이상하게도 화(怒)가 악(惡)이라는것을 인지를 못한다. 화는 맹독이다. 불교에서는 병(病)이라는말을 사용한다. 마음이 화에 물든면 인간의 성장은 멈춰버린다.

Strangely, people in the world do not realize that anger is evil. Anger is a deadly poison. In Buddhism, they use the word 'disease.' If the mind is stained with anger, human growth stops.

화는 지혜와 이해로 극복하는것이지 인내하고 억제하는것이 아니다. 화를 극복한다는것은 행복해지는과정이자 인간이 성장할수있는 과정이다.

Anger is overcome with wisdom and understanding, not with endurance and suppression. Overcoming anger is a process of becoming happy and a process of human growth.

화(怒)가 나는데에는 분명 발생원인이 있다. 그것이 무상(無常)이라는 것이다. 이 무상이 바로 화(怒)의 원인이다. 무상의 진정한뜻은 '만물은 순간순간 변화하고 생멸한다'는것이다. 자신도 세상도 절대로 한순간도 똑같지 않다는것이다.

There is definitely a cause for anger. That is impermanence. This impermanence is the cause of anger. The true meaning of impermanence is that 'all things change and are born and die from moment to moment.' Neither oneself nor the world are the same for even a single moment.

무상(無常)이란 일체만물의 진리이며, 이 '끝없이 변하는것'이 화(怒)를 잉태하는 원인인것이다. 우리의인생은 일방적으로 쇠퇴해 갈뿐이다. 날마다 늙어간다. 우리는 이것저것을 계획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매일매일 하강곡선을 그리는것이다. 완전히 상반된 희망과 현실이다. 희망과 현실의간격이 크면클수록 화는 강해진다. 화의 범인은 무상이다. '계속젊고 싶다'라고 생각해도 끊임없이 변해간다.

Impermanence is the truth of all things, and this 'endless change' is the cause of anger. Our lives are unilaterally declining. We grow older every day. We plan this and that, but reality is different. Every day is a downward curve. Hope and reality are completely opposite. The bigger the gap between hope and reality, the stronger the anger. The culprit of anger is impermanence. Even if you think 'I want to stay young', you are constantly changing, getting old.

생명과 물질은 '느끼는가, 아닌가'에 따라 구분한다. 느낀다면 그것은 바로 생명이다. 종교의 세계에서는 '혼' 이나 '영혼'과 같은 잘 이해할수없는 단어를 많이 쓰는데 이는 객관적으로 말하면 물체속에 있는 '감각'을 말한다.

Life and matter are distinguished by whether or not one can 'feel.' If one can feel, it is life. In the world of religion, difficult words such as 'soul' or 'spirit' are often used, but objectively speaking, the term refers to the 'sensation' in an object that also includes human beings.

왜 생명은 필사적으로 호흡을 하는가? 호흡을 하지않으면 극심한 고통이 찾아와 견딜수 없기때문이다. 그럼으로 분명한것은 감각은 고(苦)라는것이다. 산다는것은 '감각이있는것' 그리고 그 감각은 고(苦)이다. 또한 고(苦)가 사라지는 순간은없다. 다만 변할뿐이다. 우리는 항상 고 한가운데 있다.

Why does life desperately breathe? Because if we do not breathe, extreme pain will come and we will not be able to bear it. Therefore, it is clear that sensation is suffering. To live is to 'have sensation' and that sensation is suffering. Also, there is no moment when suffering disappears. It just changes. We are always in the midst of suffering.

산다는것은 곧 고(苦)다. 고(苦)가 싫다는 반응이 곧 화(怒)다.

Living is suffering. The reaction of not liking suffering is anger.

그러므로, '끝없는 고(苦) = 끝없는 화(怒)다.

Therefore, ‘endless suffering’ = 'endless anger.'

산다는것은 이처럼 기본적으로 화를 내게 하는 구조로 이루어져있다.

Life is fundamentally structured in a way that makes you angry.

그런데 여기서 큰 문제는 어느 누구도 산다는것이 "고" 라는 사실을 발견하지못하고 산다는점이다. 산다는것이 '고'라는 발견없이 모두 '싫다'라는 생각만 가지고 있을뿐이다.

But the big problem here is that no one, except for very few, has discovered the fact that living is "suffering." Without discovering that living is "suffering," everyone just thinks that "I don't like it."

'산다는것이 고'라는 근본은 모른체 '싫다'라는 사실만 실감하며 살아간다. 이 '싫다'라고 하는 반응이 곧 '화'이다.

We live our lives only feeling the fact that we ‘don’t like it’ without knowing the fundamental truth that ‘living is suffering’. This reaction of ‘don’t like it’ is ‘anger’.

'산다는것이 고'라는것은 불교 진리인 고성제(苦聖諦)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냥 내버려두면 되겠지만, 생명에게는 '고(苦)는 싫다'라는 마음이있다. '산다는것이 고'라는 사실을 이해하지못하기때문에 '고는 싫다'라는 마음이 한층 강렬해진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라도 행복해지고 싶다'라는 생각하게된다.

'To live is suffering' is the Buddhist truth of the Noble Truth of Suffering. If this were true, we could just leave it alone, but life has a mind that 'does not like suffering'. Because we do not understand the fact that 'to live is suffering', the mind that 'does not like suffering' becomes even stronger. And we end up thinking, 'I want to be happy no matter what.'

그러나 여기서 '어떻게 해서라도'라는것은 윤리적이지 못하다는것이다. 이성이 없고 오로지 마음뿐인 감정으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이다. 이유없는 모든마음은 감정이다. 불교용어로 '갈애'라고 한다.

However, 'at any cost' here is not ethical. It is because there is no reason and it is made up of only emotions. All the minds without reason are emotions. In Buddhist terms, it is called 'clinging'.

'화 (怒)의 다른형태로 욕(慾)이란게 있다. '고'를 느낄때 '화'가 생기고 그때 '화'가 없어졌으면 하고 바랍니다. 이 '~했으면'에 중심을둔 감정이 욕(慾)이다.

'Anger' has another form called 'desire'. When you feel 'pain', 'anger' arises, and you wish that 'anger' would disappear. This emotion centered on 'if only ~' is desire.

가령 돈이없는 상태라고하자. '왜 돈이없는거야'라고 생각할때는 '화'의 감정이다. 이것이 '부자가되고싶다'라는식으로 미래형이되면 '욕'이된다. 지금 현실상황에 초점을 맞추면 '화'이고 그현실이 사라진 현실을 망각하면 '욕(慾)'이 되는것이다. 현재와 미래, 어느쪽에 기대느냐의 차이로 '화'나 '욕'이 생기는것이다. 그런데 '화'가 '욕'보다 근본적이니 세상엔 '욕'에 눈먼사람보다 '화'에 눈이먼 사람이 훨씬많다.

For example, let's say you don't have money. When you think, "Why don't I have money?", it is the emotion of "anger." If this becomes future tense, such as "I want to become rich," it becomes "desire." If you focus on the current reality, it is "anger," and if you forget the reality that has disappeared, it becomes "desire." Depending on whether you rely on the present or the future, "anger" or "desire" arises. However, since "anger" is more fundamental than "desire," there are many more people in the world who are blinded by "anger" than those who are blinded by "desire."

생존에 필요없는 '욕(慾)'은 망상이다. 망상으로 즐거운일을 생각하니 끝이없다. 더 갖고싶다. 아무리가져도 부족하다라는 '욕'이 생긴다. '욕'자체를 분석헤 우선순위를 매기면 생존에 아무런 영향이없고 당장버려야할' 욕'이 성욕(性慾)이다. 자식을 만들기위한 성교는 그 횟수가 극히 제한되기때문이다. 다른'욕' (재욕, 식욕, 잠, 등등)은 생존을위해서 갑자기 다 버릴수 없기때문에 천천히 생각하며 버리면된다.

The 'desire' that is not necessary for survival is a delusion. When you think of enjoyable things through delusion, there is no end. You want more. No matter how much you have, you feel like it is not enough. If you analyze the 'desire' itself and prioritize it, the 'desire' that has no effect on survival and should be discarded immediately is sexual desire. Other 'desires' (fame, luxuries, fine life existence, wealth, fine food, sleep, etc.) cannot be suddenly discarded for survival, so you should think about them slowly and discard them.

'화'김에 하는것은 무엇이든 실패한다'
그래서 '화'를 내지않는것이 중요하다. '화'의결과는 반드시 나쁘다. 반드시 불행해진다. 살아가는데 생기는 위협, 공포, 두려움도 '화'의 원천이다. 너무나 쉽게 '화'로 변한다. 그결과로 인생은 엉망이 되어버린다. '정말 큰일났다'라는 공포, 위협에 휩싸여도 도망치지 않고 참고 견디면 그감정은 사라진다.

Anything you do in anger will fail. That's why it's important not to get angry. The result of anger is always bad. You will always become unhappy. The threats, fears, and fears that arise in life are also sources of anger. They turn into anger so easily. As a result, your life becomes a mess. If you endure the fear and threat of 'something really big is happening' without running away, that feeling will disappear.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것은 불안, 공포, 위협이다. 누구나 위협을당하고 불안한 상태에 있다. 살아있는한, 늙으면 병과 죽음에 위협당하고 불안에 휩쓸린다. 여기에서 도망친 생명은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위인생은 강제수용소 같은것이다.

What keeps us alive is anxiety, fear, and threats. Everyone is threatened and in a state of anxiety. As long as we live, we are threatened by illness and death as we grow old, and we are swept away by anxiety. There is no life that escapes from this. If we think about it that way, our lives are like a concentration camp.

그러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석가는 도망치지않는, 죽음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길을 가르쳐주었다.
중도(中道) 이다,
그러면 중도(中道)란 구체적으로 어떤 삶의방식을 말하는것일까?
엄밀히, 확실히 화를 자각하면서 살아가면 '화'의 모습을알수있다. 우리는 어떤순간에도 '화'가생길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있다. 꼼꼼하게 살펴보면, 한순간에 생기는'화'까지 볼수있게된다. 그렇게되면 완전하지는않지만, 대략 '화를 극복할수있다'라고 할수있다.

Then what should we do?
The Buddha taught us the way not to run away, not to fall into the trap of death.
It is the Middle Way.
So what kind of lifestyle does the Middle Way specifically refer to?
Strictly speaking, if we live while being aware of anger, we can see the form of 'anger'. We are placed in an environment where 'anger' cannot help but arise at any moment. If we look closely, we can even see 'anger' that arises in an instant. If we do that, it is not perfect, but we can roughly say that 'anger can be overcome'.

'화'를 극복하기위해선 '화'를발견해야하기때문에 '화'란 이런것이라는 정보가 필요하다.

In order to overcome 'anger', you need to discover 'anger', so you need information about what 'anger' is.

불교에서는 '화'를 10종류로 분류한다. 10종류로 나눈이유는 위험성의 차이, 행위의 차이, 결과의 차이가 있기때문이다.

In Buddhism, 'anger' is classified into 10 types. The reason for dividing it into 10 types is because there are differences in risk, differences in actions, and differences in the results.

1. Dosa, '화'
팔리어로 Dosa 는 본래 '더럽다' '흐려지다'라는 뜻으로 소위 '어둡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화'라는것은 반드시 '어둡다' 또는 '싫은느낌'이라 해도되겠다.
건강하고 밝은마음에 조금이라도 '싫다'라는 '화'가 들어오면 순식간에 밝음이 줄어든다. 이렇게 조금이라도 어두운 기분이 있는 단계가 Dosa 이다.

In Pali, Dosa originally means 'dirty' or 'cloudy', so to speak, meaning 'dark'. 'Anger' can also be said to mean 'dark' or 'a feeling of dislike'. If even a little 'anger' of 'dislike' enters a healthy and bright mind, the brightness is instantly reduced. This stage of even a little bit of a dark feeling is Dosa.


2. Vera, 적대감, Animosity
베라는 다른 사람이나 집단에 대한 깊이 자리 잡은 적대감이나 적대감을 의미합니다.

Vera signifies a deep-seated feeling, anger, of animosity or hostility towards another person or group.

3. Upanaha, 원망, Resentment
원망도 '화'이다. 아주작은 싫은일이 생겨도 좀처럼 잊지못하는게 특징이다. 계속 생각이 떠 오른다. 싫은 기분을 계속해서 재생하다보면 '화'가 점점 커져서 멈출수없다. 마지막에는 정말로 그사람의 목소리까지 들리게된다. 망상하고 재생하는것이다.

Resentment is also 'angry.' Even if something small and minorly unpleasant happens, it is difficult to forget it. The thoughts keep coming to mind. If you keep replaying the unpleasant feeling, the 'anger' will grow bigger, and you will not be able to stop. In the end, you will even hear that person's voice. It is an illusion, and it relives it over and over again.

4. Makkha, 경시, Depreciation
직역은 '지운다'라는 의미를가지고있다. 무엇을지우는가 하면 사람의 좋은점을 없었던걸로 하기때문에 '경시'라고 했다. 다른사람의 좋은점은 무시하고 결점만 찾는다. 또 나쁜점을 찾지못하면 '화'를 낸다.

The direct translation is 'to erase'. What is erased? It means to treat a person's good points as if they never existed, so it is called 'degrading attitude'. They ignore the good points of others and only look for flaws. And if they can't find any flaws, they get 'angry'.

5. Palasa, 경쟁, Competition
말과 행동으로 계속 싸우려는것이 경쟁이다. 흔히 '성이 찰 때까지'라고 말하지만, 이경쟁은 아무리 상대를 공격해도 성이차지않는다. 상대가 패배해도 자손에게까지 이어질정도로 끝이나지 않는다.

Competition is about continuing to fight with words and actions. It is often said, "until you are satisfied," but this competition is not satisfied no matter how much you attack the opponent. Even if the opponent is defeated, it does not end and continues to the point where it is passed down to descendants.

6. Issa, 질투, Jealousy
질투는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이 없으면 생기지않는 '화'이다. 그리고 질투는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Jealousy is a 'anger' that does not arise unless there is someone superior to you. And jealousy is focused on yourself.

7. 인색함, Stinginess, Macchariya
인색함은 '자신의 즐거움을 타인에게 양보하고싶지않은 '화'이다.

Stinginess is the 'anger' of not wanting to give up one's own pleasure to others.

8. Dubbaca, 경직, Stubbornness
'두바카'의 직역은 '말하기 어려움'이다. '지도하기어려운, 가르치기 어려운, 저사람한테는 좀 말하기가 거북하다'고 하는 느낌이다. Dubbaca 의 사람은 다른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다. 

The direct translation of 'Dubbaca' is 'difficult to speak'. It gives the feeling of 'difficult to guide, difficult to teach, it is a bit awkward to speak to that person'. A Dubbaca person does not listen to what others say.

석가는 '누구나 깨달음을 얻을수 있읍니까?' 라는 질문에 '말하는것을 그대로 듣는 사람, 자신의 나쁜점을 솔직하게 말해주는사람, 이 두가지 조건을 충족한 사람이 나에게 오면 2~3주 안에 깨달을수 있게 지도 할수 있읍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대로 듣는 사람'은 '두바카'의 반대이다. '자신의일을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은 Makkha 의 반대이다.

When asked to the Buddha, "Can anyone attain enlightenment?", the Buddha said, "If someone who listens to what I say and honestly tells me his/her faults comes to me and satisfies these two conditions, I can guide him/her to enlightenment in two to three weeks." A "listener" is the opposite of "Dubhakha." A "speaker of his/her own affairs honestly" is the opposite of "Makkha."

자아가 경직되면 '화'가 생긴다. Dubbaca 의 사람은 깨달음에서 가장 먼사람이다. Dubbaca 의 사람은 딱딱한 껍질로 둘러싸인 쇠구슬과 같아 그속으로 아무것도 들어가지못한다. 

When the ego is rigid, 'anger' arises. A person of Dubbaca is the furthest from enlightenment. A person of Dubbaca is like an iron ball surrounded by a hard shell, and nothing can enter it.

9. Kukkucca, 후회, Regret
후회도 '화'다. 과거에 한 일과 않았던일에 머물고 있기때문에 그사람은 앞으로 나아가지못한다. 실패를 떠올릴때마다 발걸음이 멈추어지고, 앞으로 나가는 스피드가 떨어진다. 과거의 실패에 머물러, 정신적으로 멈춰버린다. 멈춰선체로 썩어간다.

Regret is also 'anger.' Because they are stuck in the past and the things they did not do, they cannot move forward. Every time they think of their failures, their steps stop and their speed of moving forward slows down. They stay stuck in their past failures and become mentally stagnant. They stop, stand still, and rot away.

10. Byapada, 격노, Rage
'비야파다'는 격노이다. 도사(Dosa)의 도를 넘는 격렬한 '화'이다. 타인을 불행하게 만들고 싶어하는 화로써 실제로 행동으로 옮길수도있는 '화' 이다. 비야파다는 이상한 화 또는 이유없는 화 라고도 불린다.

'Byapada' is rage. It is a fierce 'anger' that exceeds the Dosa's degree. It is an 'anger' that wants to make others unhappy and hurt and can actually be put into action. Byapada is also called strange anger or causeless anger because there appears to be no outward source for 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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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화를 어떻게 대처 해야 하는가?
So how should we deal with anger?


1. '화'를 빨리 깨닫고 빨리 지워야한다.

1. You must quickly realize the ‘anger’ and quickly erase it.



2. '화'가 커지는것을 억제한다.

2. Don't feed the growth of ‘anger’.



3. 밝기가 줄어드는것을 깨닿는다.

3. Notice the brightness decreasing as anger arises.



4. '화'를 지혜로 없앤다. '화'는 이해함으로써 없어지는것이지 싸워서 없어지는것이아니다. 싸우면 싸울수록 '화'의 불길이 더맹렬히 타오른다. '화'를 '화'로 대하면 자신이 화염에 휩싸여 사라질뿐이다.

4. Eliminate 'anger' with wisdom. 'Anger' disappears through understanding, not through fighting. The more you fight, the more fiercely the fire of 'anger' burns. If you treat 'anger' with 'anger', you will only be engulfed in flames and disappear.



5. '화'가 나면 무조건 멈춘다. 사람은 화가 치밀어 오르면 무턱대고 행동적이 된다. 평소에 행동적이지않던 사람도 화가나면 행동적이된다. 이때는 무조건 멈춰야한다.

5. When you get angry, stop unconditionally. When people get angry, they become recklessly action-oriented. Even people who are not normally action-oriented become action-oriented when they get angry. At this point, you must stop uncondition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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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中道)의 삶이란 사물의 이면을 볼줄아는 삶이며 균형을 유지할줄 아는 삶이다. 무상(無常)과 무아(無我)의 원리에 충실한 삶이다. 모든것은 변화함을 알기에, 과거를 못내 아쉬어 하거나 미래를 지레 걱정하기 보다는 주어진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삶이다. 또한 독립된 내가 없음을 알기에 나를 고집하지않는 삶이다.

The life of the Middle Way is a life that knows how to see the other side of things and maintain balance. It is a life that is faithful to the principles of impermanence and non-self. Knowing that everything changes, it is a life that does its best in the present rather than regretting the past or worrying about the future. Also, knowing that there is no independent self, it is a life that does not insist on 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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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믿을수 없는 세가지가 있다. 바로 몸뚱이와 목숨과 재물이다.

There are three things in this world that cannot be trusted: your body, life, and wealth.

그러나 또한 이 세가지를 통해 믿을만 한것을 찾아내야 한다.

But we also need to find something trustworthy through these three.

지혜로운이에게 겸손한 자세로 공경하고 모르는 것은 그때마다 묻는것은 이 몸뚱이를 통해 믿을만 한것을 찾는일이다. 

To respect the wise with humility and ask them about what you don't know is to find something trustworthy through this body.

이몸이 다할때까지 함부로 다른 목숨을 해치지않고 항상 부끄로워 할줄 알며 모든 중생을 평등하게 사랑하며 욕심내지 않고 널리 베풀며, 삿된 음행을 하지않고 거짓으로 세상을 속이지 않으며 술에 취해 지혜를 잃지 않눈것은 목숨을 통해 믿을만 한것을 찾는일이다.

Until the end of this body, not harming other lives indiscriminately, always knowing how to be ashamed, loving all living beings equally, not being greedy, giving widely, not engaging in sexual immorality, not deceiving the world with lies, and not losing one's wisdom through intoxication - this is finding something trustworthy through life.

지혜를 닦고 중생을 구제하는 청정한 수행자를 정성껏 뒷바라지하고 가난하고 외로우며 병든사람을 돌보는것은 재물을 통해 믿을만 한것을 찾는일이다.

To diligently support the pure practitioners who cultivate wisdom and save sentient beings, and to care for the poor, lonely, and sick, is to find something trustworthy through weal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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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있을때나 없을때나
성냄이 일어나면 말을 하지마라.
분노가 불꽃처럼 일어나는 사람은
자신을 스스로 알지못한다.

Whether there are people or not,
When anger arises, do not speak.
A person whose anger rises like a flame
Does not know himself.



자아(自我, Ego)라는 껍질은 환각이다
이 환각으로 인해 '화'가 끊임없이 생긴다.
상대가, 주위의 모든사람이, 라이벌이 되어버린다.

The shell called ego is an illusion.
This illusion causes 'anger' constantly.
The other person, everyone around you, becomes your rival.


제 부끄러움도 모르고
남 부끄러움도 없이
성내기를 좋아하면
그사람은 분노의 사슬에 묶이나니
어둠속에서 등불을 잃는것과 같다.

If one does not know his own shame, and does not feel the shame from others, and is fond of getting angry, then he is bound by the chains of anger, and it is like losing a lamp in the dark.



거울은 사물을 비취되, 사물이 아직 오지 않았을때는 앞서서 미리 받아들이지 않으며

A mirror reflects things, but does not reflect things in advance when they have not yet arrived.

사물이 앞에 왔을때에도 미워하거나 좋아하는 차별을 하지않으며

Even when things come in front of it, it does not discriminate between hating and liking them.

물건이 사라진후에도 집착하여 잡아두지 않는다.

It does not cling to or hold on to things after they're gone.

이와같이 마음도 모든것을 항상 고요하게 비추지만,  미래에대해 성급하지않으며, 현재에 대해 차별하지않으며, 과거에대해 집착하지않는다.

Like this way, the mind always reflects everything calmly, but it is not hasty about the future, not discriminatory about the present, and not obsessed with the p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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