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July 21, 2025

By oneself is evil done, by oneself is one defiled. By oneself is evil left undone, by oneself is one purified. Purity and impurity depend on oneself—no one can purify another. -Dhammapada 165

스스로 악을 행하면 스스로 더러워지고, 스스로 선을 행하면 스스로 깨끗해진다. 깨끗하고 더러움은 모두 자신에게 달린 것이며, 아무도 남을 깨끗하게 해줄 수 없다. - 법구경 165

Monday, July 14, 2025

What am I?

心卽是佛 佛卽是覺

심즉시불 불주시각

마음이 곧 부처이고, 부처는 곧 깨달음이다.





心生卽種種心生 心滅卽種種心滅 如來大師云 三界虛僞 唯心所作

심생즉종종심생 심멸즉종종심멸 여래대사운 삼계허위유심소작

When one thought arises, many various minds arise, and when one thought disappears, many various minds disappear. The Buddha said, “The three realms are false, and only the mind creates them.”

마음이 생기면 갖가지 마음이 생기고, 마음이 사라지면 갖가지 마음이 사라진다. 여래께서 말씀하시기를, 삼계가 허위이니 오직 마음이 지어낼 뿐이다.





百劫樍集罪 一念頓湯除 如火焚枯草 滅盡無有餘 

백겁적집죄 일념돈탕제 여화분고초 멸진무유여 

백겁 동안이나 쌓인 나의 모든 죄업을 한 순간 모두 제거해 주십시오. 마치 마른 풀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았다 하더라도 불을 붙이면 일시에 타버리듯이 다 소멸되게 해 주십시오.



罪無自性從心起 心若滅時罪亦亡 罪亡心滅兩俱空 是則名爲眞懺悔

죄무자성종심기 심약멸시죄역망 죄망심멸양구공 시즉명위진참회

죄라는 것은 본래 실체가 없는데 마음으로 좇아서 일어나는 것이므로 마음이 소멸되면 죄 또한 없어진다. 마음도 없어지고 죄도 없어져서 그 두 가지가 함께 공(空)해져서 버릴 때 이것이야말로 진짜 참회이다.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If you seek me, Buddha, with your eyes or seek me with your voice, you are following the wrong path and cannot see the Buddha. -The Diamond Sutra

만약 형상으로 나를 보려 하거나 소리로 나를 찾으려 한다면, 이는 삿된 길을 가는 것이니 여래를 볼 수 없을 것이다. - 금강경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Seeing that the five aggregates are empty, overcoming all suffering - The Heart Sutra

'관찰수행을 통하여 오온이 다 공함을 밝게 알고서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반야심경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All conditioned phenomena are like dreams, illusions, bubbles, and shadows, like dew and lightning. You should view them in this way. - The Diamond Sutra

이세상의 모든 현상이 꿈, 환상, 물거품, 그림자 같으며, 이슬과 같고 번개와 같으니, 응당 이와 같이 관찰해야 한다 -금강경





空生大覺中 如海一漚發 有漏微塵國. 皆從空所生 漚滅空本無 況復諸三有.

공생대각중 여해일구발 유루미진국. 개종공소생 구멸공본무 황부제삼유. <능엄경>.

허공이 대각 가운데서 생기게 된 것이
마치 바다에서 물거품이 하나 일어나는 듯하고,
미진같이 수없는 유루국토들이
모두 허공을 의지하여 생기었다.
물거품이 소멸하면 허공도 본래 없거늘
하물며 다시 삼유가 있겠는가?

미망으로 인하여 허공이 생기게 되고 허공을 의지하여 세계가 성립되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또 저 드넓은 허공은 대각(大覺) 가운데서 나왔다고 하였다. 대각이 무엇인가. 대각이 무엇이기에 온 우주를 다 감싸고 있는 저 넓은 허공이 대각 가운데서 나왔다고 하는가? 대각이란 사람 사람들의 마음이다. 마음에서 허공이 생겼고 허공에 의지하여 모든 세계와 온 우주가 다 존재한다. 허공은 대각에서 볼 때 큰 바다에 거품 한 방울이라 하였다. 그 거품이 소멸하듯 본래 없는 그 허공까지 없는데 우리가 의지해서 사는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가 어디에 있겠는가. 모두가 환영이요, 그림자다. 그와 같이 삼계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인생사도 역시 환영이며 그림자며 꿈속의 일이다.




菩提自性 本來淸淨 但用此心 直了成佛
보리자성 본래청정 단용차심 직료성불
The self-nature of our mind, Bodhi, is originally pure. Just use this mind to directly attain Buddhahood.



瞋是心中火 能燒功德林 欲行菩薩道 忍辱誰直心

진시심중화 능소공덕림 욕행보살도 인욕수직심

Anger is the fire in the mind, burning the forest of virtue. If you want to follow the path of Bodhisattva, you must live a life of humility and have a straight mind.

분노는 마음속의 불, 공덕의 숲을 살라버린다네.
보살의 길을 가려고 하거든 인욕하는 생활과 곧은 마음을 지녀야 한다.





滅我慢是下心卽成佛
멸아만시하심즉성불

Whether a monk or a lay Buddhist, one must first abandon one's ego and become completely humble in order to attain Buddhahood.

수도승이든 재가불자이든 먼저 자기의 아만심我慢心을 버리고 철저히 하심下心이 되어야만 성불이 가능하다.




念起卽覺 覺知卽無

염기즉각 각지즉무

생각이 일어나면 즉시 알아차리고, 알아차리면 즉시 사라진다 즉, 마음속에 일어나는 잡념이나 번뇌를 알아차리기만 하면 저절로 사라진다는 의미이다. 망념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며, 알아차리고 집착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사라진다는 뜻이다.





不生衆生心裏佛 隨自根堪無異物 欲知一切諸佛源

불생중생심리불 수자근감무이물 욕지일체제불원 

Buddha is in the mind of all living beings, and is not different from others except according to one's own ability. If one wants to know the origin of all Buddhas, one must realize one's own ignorance.

부처는 중생의 마음속에 있고, 자신의 능력에 따라 다를 뿐 다른 것이 아니며, 일체 부처님의 근원을 알고자 한다면 자신의 무명을 깨달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즉, 부처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중생의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으며, 자신의 무명을 깨달음으로써 부처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奇哉 奇哉 普觀一切衆生 具有如來智慧德相 但而妄想執着 而不證得

기제 기제 보관일체중생 구유여래지혜덕상 단이망상집착 이불증득 

Wonderful, wonderful! All sentient beings possess the wisdom and virtue of the Tathagata, but they cling to delusion and do not attain it.

참으로 놀랍도다, 널리 모든 중생을 살펴보니 여래의 지혜와 덕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망상과 집착 때문에 깨닫지 못하고 있다. -화엄경





假使百千劫 所作業不忘 因緣會遇時 果報還自受

가사 백천겁 소작업 불망 인연회우시 과보환자수

Even if a hundred thousand kalpas pass, the karma you have created will not disappear, and when the karmic relationship meets, you will receive the results on your own.

설령 백 천 겁의 시간이 지나더라도 지은 바 업은 없어지지 않고, 인연이 만나는 때에 과보를 스스로 받게 된다

순현보(順現報): 금생에 이 몸을 가지고 지은 업의 과보를 금생에 바로 받는 경우.
When the karma of one's current life is directly received in this life.

순생보(順生報): 지금 세상에서 지은 선악에 따라 다음 세상에서 받는 인과응보.
The karmic retribution received in the next world according to the good and evil deeds done in this world.


순후보(順後報): 받기는 받되 언제 받게 될지가 일정하지 않은 과보.
A karmic receipt is certain, but the timing of the receipt is uncertain.





三界唯心 萬法唯識

삼계유심. 만법유식.

The world originated from the mind. Everything is created by the mind.

세상은 오직 마음에서 연기한 것이다.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 낸다.





三界虛僞 唯心所作

삼계허위 유심소작

The Three Realms are false, created by the mind

삼계(三界)는 허망한 것이며, 오직 마음이 지은 것이다.




無咎無法 不生不心

무구무법 불생불심

허물이 없으면 법도 없고, 생겨나지 않으면 마음도 없다"는 뜻으로, 이는 일심불생(一心不生) 즉,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으면 만법무구(萬法無咎), 모든 법이 허물이 없게 되고, 나아가 무구무법 불생불심의 경지에 이르게 됨을 의미한다. 




百年貪物 一朝塵

백년탐물 일조진

A mind polished for three days becomes a treasure for a thousand years, and wealth coveted for a hundred years becomes dust in a single day.

삼 일 동안 닦은 마음은 천 년의 보배가 되고, 백 년 동안 탐한 재물은 하루아침에 티끌이 되느니라.




如來者 無所從來 亦無所去 古名如來

여래자 무소종래 역무소거 고명여래. 

Tathagata neither comes from nor goes anywhere, and that is why it is called the Tathagata.

본래 여래란 어디서 오는 것도 아니며,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여래라 일컫는 것이니라.




不見一法卽如來, 了卽業障本來空

불견일법즉여래, 요즉업장본래공

"한 법도 보지 못한다"는 것은 육체나 물질, 감정, 생각 등 모든 현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일체의 분별심을 떠난 상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면 곧 여래, 즉 부처와 같아진다.

"깨달으면 업장이 본래 공하다"는 것은 업보의 결과인 고통과 번뇌가 본래는 실체가 없는 것임을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업장은 인연 따라 생겨나지만, 무아의 경지를 깨달으면 그 업장조차도 공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此有故彼有 此生故彼生 此無故彼無 此滅故彼滅

차유고피유 차생고피생 차무고피무 차멸고피멸 

Because this exists, that exists. Because this arises, that arises. Because this does not exist, that does not exist. Because this ceases, that ceases.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다. 이것이 생기면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





一切法 如鏡中像 無體可得 唯心虛妄 以心生則 種種法生 心滅則種種法滅故

일체법 여경중상 무체가득 유심허망 이심생즉 종종법생 심멸즉 종종법멸고

All dharmas are like images in a mirror, without substance to be found, only the mind is illusory. When the mind arises, all dharmas arise; when the mind ceases, all dharmas cease.

일체법은 거울 속에 나타난 허상과 같아 얻을 만한 실체가 없듯이, 삼계(三界)도 심의식(心意識)의 허망한 망상으로 일어났을 뿐이다. 왜냐하면 일심이 무명으로 나오면 갖가지 법이 따라 나오고, 일심의 무명이 사라지면 갖가지 법도 따라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色有動靜 見性不動, 聲有生滅 聞性常在.

색유동정 견성부동 성유생멸 문성상재

All matters (including a body) have movement and stillness, but seeing nature is still (always there). Sound has birth and death, but the hearing nature is always there.

물질은 움직임과 머무름이 있지만 물질을 보는 성품은 부동하다. 소리는 생과 멸이 있지만 소리를 듣는 성품은 항상 있다.




四大元無主 五蘊本來空 將頭臨白刃 猶似斬春風

사대원무주 오온본래공 당두임백인 유사참춘풍

The four elements are without a master, the five aggregates are originally empty, putting your head on the sword is like cutting the spring breeze

"땅(地), 바람(風), 불(火), 물(水)로 이루어진 몸뚱이는 원래 주인이없고, 오온 (마음, 색수상행식)은 본래 비어있다. 단두대에 내민 내 머리를 휜칼로 친다해도 그것은 마치 봄바람을 베어 버리는것과 같다." - 승조대사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심부재언 시이불견 청이불문

마음에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




人身難得 佛法難逢 此身不向今生度 更待何生度此身

인신난득 불법난봉 차신불향금생도 갱대하생도차신

It is hard to obtain a human body, it is hard to encounter the Dharma. If I cannot save this body in this life, when will I save it?




念起念滅 謂之生死 當生死之際 須盡力提起話頭

염기염멸 위지생사 당생사지제 수진역제기화두

The arising and disappearance of thoughts is called life and death. You must use all your strength to concentrate on your koan while your thoughts arise and disappear.

생각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생사(生死)라고 한다. 생각이 한번 일어났다 없어지는 그쯤을타서 모름지기 온힘을 다하여 화두를 들어야한다.




三界猶如汲井輪 百千萬劫歷微塵 此身不向今生度 更待何生度此身

삼계유여급정륜 백천만겁역미진 차신불향금생도 갱대하생도차신

삼계윤회의 오르고 내림은 우물속 두레박같아 백천만겁을 지나도 벗어나기 어렸다. 이 몸을 금생에 제도하지 않으면, 어느 생을 기다려 이 몸을 다시 제도하리오.

The three realms are like a well-drawing water bucket, which has passed through dust for hundreds and thousands of kalpas. If this body cannot be saved in this life, then in which life will it be saved?





若人欲識佛境界 當淨其意如虛空 速離妄想及諸趣 令心所向皆無碍

약인욕식불경계 당정기의여허공 속리망상급제취 영심소향개무애

If one wishes to know the realm of Buddha, one should purify one's mind like the void and abandon all delusions and desires so that one will not be unhindered.

만약 누구라도 부처님의 경계를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그 뜻을 허공과 같이 맑게 하여서/ 망상과 모든 집착을 멀리 여의고/ 마음이 향하는 곳 걸림이 없도록 하라. -화엄경





寤寐不忘 不僧上蒲團 只是從朝至暮 步步不離

오매불망 부승상포단 지시종조지모 보보불리

I never forget it even when I am awake or asleep. I don't sit on the futon. I just stay with you from morning till night.




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

보리본무수 명경역비대 본래무일물 하처약진애

There is no Bodhi tree, nor is there a mirror stand. There is nothing at all, so where can dust gather? - The Sixth Patriarch Henung

보리는 본래 나무가 아니고 명경 또한 대가 아니니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디에 먼지가 낄 것인가 - 육조 혜능




心生則種種法生 心滅則龕墳不二 三界唯心萬法唯識 心外無法胡用別求

심생즉종종법생 심멸즉감분불이 삼계유심만법유식 심외무법호용별구

마음이 생기면 가지가지의 법이 생기고, 마음이 멸하면 가지가지의 법이 멸한다. 삼계가 오직 마음이요, 모든 현상이 앎에 기초한다. 마음 밖에 아무 것도 없는데 무엇을 따로 구하랴.


平常心

평상심 은 특별한 일이 없을 때의 평범한 마음 상태를 의미한다. 즉, 일상생활에서 특별한 동요나 변화 없이 평온하고 안정된 심리 상태를 말하며, 선불교에서는 평상심을 도(道)와 동일시하며, 번뇌나 망상 없이 자연스럽고 꾸밈없는 마음 상태를 말한다. 

평온하고 안정된 마음:
특별한 감정 변화나 동요 없이 평정심을 유지하는 상태를 뜻함. 

無是非 (무시비) 차별심과 사량계교가 없는 마음:
좋고 싫음, 옳고 그름과 같은 분별심이나 생각을 벗어난 순수한 마음. 

無取捨 (무취사) 번뇌 망상이 없는 마음:
걱정, 근심, 불안과 같은 번뇌나 망상에서 벗어난 깨끗한 마음입니다. 

無操作 (무조작) 자연스러운 마음:
인위적이거나 꾸밈이 없는 자연스러운 상태의 마음.

Tuesday, July 8, 2025

Prajnaparamita (Heart) Sutra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摩訶般若波羅密多心經] 

https://www.youtube.com/watch?v=OBN858UjE44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密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관자재보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아주깊이 행할때 세계가 모두 공하다는것을 두루 알게되었고, 모든 고통에서 벗어날수 있었다.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사리자여, 색이 공과 다르지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다.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니, 수상행식도 이와같다.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사리자여, 세상의 모든것이 공이라 생겨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다. 더럽지도 깨끗 하지도 않으며, 더해지는것도 없고 줄어드는것도 없다.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그러므로 공의 관점에서 보면 색수상행식도 없다. 눈도, 귀도, 코도, 혀도, 몸도, 의식도 없고, 색깔도, 소리도, 향기도, 맛도, 감촉도, 법도 없다. 안계부터 의식계 까지 다 없다.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無苦集滅道 無智 亦無得 以無所得故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무지 역무득 이무소득고

무명도 없고 무명이다함도 없다. 죽고 사는것도 없고 죽고사는것 다함도 없다. 고집멸도도 없다. 지혜도 얻을 것도 없다. 얻을것이 없기 때문에 그러하다.


菩提薩埵 依般若波羅密多 故心無罣碍 無罣碍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 고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보리살타는 반야바라밀에 의존하여 마음에 걸림이 없다.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도 없어서, 뒤바뀐 헛된 생각을 멀리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간다.


三世諸佛 依般若波羅密多 故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 고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붓다, 즉 깨달은 자들은 반야바라밀다에 의존하기 때문에 가장 높은 깨달음을 얻는다.

 

故知 般若波羅密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能除一切苦 眞實不虛 故說般若波羅密多呪 卽說呪曰 

고지 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고설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반야바라밀다는 매우신령스럽고, 매우분명하고, 비교 할바없는 가장높은 주문이니, 모든 고통을 없애준다. 이는 헛되지않은 진실이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의 주문을 말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3-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3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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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ajnaparamita (Heart) Sutra

The Noble Buddha-to-be Avalokiteśvara, while dwelling deep in the practice of the perfection of wisdom, beheld these five aggregates (of mind and body) and saw them empty of self-nature.

Śāriputra, form is not different from emptiness, emptiness is not different from form; form is emptiness, emptiness is form; the same for feelings, perceptions, volitional processes, and consciousness.

Śāriputra, all things have the characteristics of emptiness, no arising, no ceasing; no purity, no impurity; no increasing, no decreasing.

Therefore, looking at the perspective of emptiness, there is no form, no feeling, no perception, no volitional processes, no consciousness; there are no eye, ear, nose, tongue, body, or mind; no forms, sounds, smells, tastes, touches, or thoughts; no eye-element (and so on) up to no mind-consciousness element; no ignorance, no destruction of ignorance (and so on) up to no old age and death, no destruction of old age and death; no suffering, arising, cessation, or path; and no knowledge, no attainment, and no non-attainment.

Therefore, because of the Buddha-to-be’s non-attainments, he relies on the Perfection of Wisdom and dwells with his mind unobstructed; having an unobstructed mind, he does not tremble; overcoming all oppositions, he attains the state of Nirvāṇa.

All the Buddhas abiding in the past, in the present, and in the future, relying on the Perfection of Wisdom, fully awakened to the unsurpassed Perfect and Complete Awakening.

Therefore, one should know that the Perfection of Wisdom is a great mantra, a great scientific mantra, an unsurpassed mantra, an unmatched mantra, the subduer of all suffering, the truth, and not falsehood.

In the Perfection of Wisdom the mantra has been recited in this way:

gate, gate, pāragate, pārasamgate, Bodhi, svāhā! (3 times)

Sunday, June 29, 2025

The Four Noble Truths and the Eightfold Path

The Four Noble Truths (四聖諦 사성제 catvāri āryasatyāni) are the foundational teachings of Buddhism that outline the nature of suffering and the path to liberation. 

사성제는 불교 교리의 핵심이며, 고통의 원인을 알고, 고통에서 벗어나 열반에 이르도록 돕는 가르침입니다. 

Dukkha (고성제 苦聖諦 Suffering) is an innate characteristic of transient existence; nothing is permanent, and that is suffering. The first truth, suffering, is an impermanent characteristic of existence in the realm of continuous rebirth, called samsara (wandering).

There are eight different types of suffering:
1-4.生老病死 Birth, Aging, Getting Sick, and Dying.
5. 원증회고(怨憎會苦) 미워하는 것을 만나는 괴로움. Meeting ones you dislike.
6. 애별리고(愛別離苦) -사랑하는 것과 헤어지는 괴로움. Separating from ones you like.
7.구부득고(求不得苦) -구하는 바를 얻지 못하는 괴로움. Not getting the ones you want.
8. 오음성고(五陰盛苦) - Suffering caused by Rupa(색 色), Vedana(수 受), Samjna(상 相), Samskara(행 ),
Vijnana(식 ).육체의 본능에 의한 괴로움. 오음이란 곧 5온(五蘊)으로 다섯 가지 집착의 쌓임이 모두 고통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다섯 가지 집착의 쌓임이란 육신에 집착하는 것 (색), 감각적인 것에 집착하는 것(수), 지각하는 것에 집착하는 것(상), 의지에 집착하는 것(행), 의식에 집착하는 것(식)을 말한다. 즉 오음성고는 우리 육신을 구성하고 있는 다섯 가지 요소가 치성해서 일어나는 고통을 말한다. 대개 물리적ㆍ심리적ㆍ정신적 5종 요소로 형성되어 있는 생명 존재를 오음신(五陰身)이라 부른다.
색(色)은 물질이다. 우리의몸을 포함해 이 우주전체가 색이다. 우리가 눈,코,귀,혀,몸으로 보고 듣고, 맡고, 맛보고, 느낄수 있는 모든대상이 색(色)이다. 
This, rupa 색 色, includes everything: emptiness in space, color, objects, sun, sea, sky, homes, air, H2O, CO2, oxygen, light, smells, heat, cold, taste, and stars in our galaxy and universe.

수(feeling 수 受)는 색과색의 부딪힘이다. 
Vedana(Feeling 수 受) is collision between (among) Rupas(색 色).
곧 우리가 눈,코,귀,혀,몸으로 보고, 맡고, 듣고, 맛보고, 느끼는것이 수()다.
이렇게 색과색이 부딪힌 다음에, 좋다, 싫다, 아니면 무반응의 감정이 일어나는데 이것이 상(perception)이다.
Samjna(상 相) is a perception (like, dislike, or neither like or dislike) that results from Vedana.
행(Volition/Intention/Action)은 상(相)에반응하여 나타나는 행위이다. 좋으면 취하고자 하고 싫으면 피하고자 하는 행위자체 (마음먹거나 아니면 행위)로 옮기는것이 행()이다.
Samskara, (行 행 Volition Intention Action) is a reaction to Samjna(상 相).
그리고 이러한 수->상->행의 과정을 거치고나서 마음속에 어떠한 일이나 상황, 아니면 사람에대한 관념과 인식이 자리를 잡게되는데 그것이 오음의 마지막인 식() 이다. 오음성고()는 곧 오음이 치성하다는 말이고 다른말로는 번뇌망상이 치성하다는 말. 곧 번뇌망상이 고()라는 말이다.
Vijnana(식 識) is the end result of the process of Vedana -> Samjna -> Samskara. 
This is what gets stored into your conscience in the form of discriminating knowledge, experience, or karma. These are the bases of all thoughts and actions, evil or good, and that which is suffering.

Samudaya (집성제 集聖諦 Cause of Suffering): together with this transient world and its suffering, there is also thirst, craving for, and attachment to this transient, unsatisfactory existence. To end suffering, the four noble truths tell us, one needs to know how and why suffering arises. The second noble truth explains that suffering arises because of craving, desire, and attachment.

Nirodha(滅聖諦 severance of suffering): the attachment to this transient world and its suffering can be severed or contained by the controlling or letting go of this craving. If the cause of suffering is desire and attachment to various transient things, then the way to end suffering is to eliminate such craving, desire, and attachment.

Marga (道聖諦 ways to extinguish suffering): the Noble Eightfold Path is the path leading to the extinguishing of this desire and attachment, and therefore release from dukkha, suffering.

The Noble Eightfold Path 팔정도(八正道) is the summary of the path of Buddhist practices leading to liberation from samsara, the painful cycle of rebirth, in the form of nirvana.

The eight Buddhist practices in the Noble Eightfold Path are:

1. Right View 正見 정견 (sammā ditthi): our actions have consequences, death is not the end, and our actions and beliefs have consequences even after death. The Buddha followed and taught a successful path out of this world and the other world (heaven and underworld/hell). Later on, right view came to explicitly include karma and rebirth, and the importance of the Four Noble Truths, when "insight" became central to Buddhist soteriology, especially in Theravada Buddhism.

올바르게 보는 것, 사물의 진실된 모습을 바르게 인식하는 것.
 

2. Right Thought 正思惟 정사유 (samyaka-samkalpa / sammā-sankappa) can also be known as "right resolve", "right aspiration", or "right motivation". In this factor, the practitioner resolves to strive toward non-violence (ahimsa) and avoid violent and hateful conduct. 

올바른 생각을 하는 것, 망상이나 악의적인 생각을 버리고 진실하고 자비로운 생각을 하는 것. 


3. Right Speech 正語 정어: no lying, no abusive speech, no divisive speech, no idle chatter.

올바른 말을 하는 것, 이간질, 거짓말, 비방, 욕설 등을 하지 않고 진실하고 부드러운 말을 하는 것. 


4. Right Conduct 正業 정업 : no killing or injuring, no taking what is not given, no sexual misconduct, no alcohol, drugs, or gambling, and no lying or fraud.

올바른 행위를 하는 것, 살생, 도둑질, 사음 등을 하지 않고 선한 행위를 하는 것. 


5. Right Livelihood 正命 정명: no trading in weapons, living beings, meat, liquor, or poisons.

No trading in living beings (human trafficking for sexual exploitation, illegal adoption, organ harvesting, slavery, or live animals), liquor (drug trafficking), or poisons (murders via medical inducements, inventing and dispersing deadly viruses and problematic vaccines for profit), or financial or religious frauds abusing victims' trust and vulnerability. 

Choose your profession or, even more importantly, your employment wisely. Do not get involved in a usury or predatory lending business where you create or add more suffering to others. 

Do not hold a job that deals with killing or meat handling, i.e., butchers, hunters. These professions do not help those who want to get into Right Samadhi.

Do not be a law person or psychiatrist who protects criminals for profit or sends innocents to an insane asylum or to incarceration. 

Do not be medical doctors or health professionals whose primary professional objective is not curing but hurting their patients or victims for profits.

Do not make a living by preaching false/fake/harmful religious/faith doctrines, leading their followers to mindless wastelands and depriving them of their right livelihood.

올바른 생계를 유지하는 것,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하지 않고 건전한 방법으로 생활하는 것. 


6. Right Effort 正精進 정정진: preventing the arising of unwholesome states, and generating wholesome states, the bojjhangā (Seven Factors of Awakening). This includes indriya-samvara, "guarding the sense-doors", restraint of the sense faculties.

올바른 노력을 하는 것, 악을 버리고 선을 증진시키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는 것.


7. Right Mindfulness 正念 정념 (sati; Satipatthana; Sampajañña): a quality that guards or watches over the mind; the stronger it becomes, the weaker unwholesome states of mind become, weakening their power "to take over and dominate thought, word and deed." In the vipassana movement, sati is interpreted as "bare attention": never be absent minded, being conscious of what one is doing; this encourages the awareness of the impermanence of body, feeling and mind, as well as to experience the five aggregates (skandhas), the five hindrances, the four True Realities and seven factors of awakening.

올바른 마음챙김을 하는 것, 항상 깨어있는 상태를 유지하고 자신의 마음과 몸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것. 

8. Right Samadhi 正定 정정,三昧,삼매  (passaddhi; ekaggata; sampasadana): practicing four stages of dhyāna ("meditation"), which includes samadhi proper in the second stage, and reinforces the development of the bojjhangā, culminating into upekkhā (equanimity) and mindfulness. In the Theravada tradition and the vipassana movement, this is interpreted as ekaggata, concentration or one-pointedness of the mind, and supplemented with vipassana meditation, which aims at insight.

올바른 선정에 드는 것,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여 고요하고 평화로운 상태를 얻는 것. 

Saturday, June 28, 2025

Kusala vs. Akusala

In Buddhism, Kusala (Pali) or Kuśala (Sanskrit) refers to wholesome, skillful, or meritorious actions, thoughts, and states of mind. It is the opposite of Akusala, which signifies unwholesome, unskillful, or unmeritorious actions and states. Kusala actions lead to positive outcomes and contribute to a positive karmic cycle. 


Kusala - Wholesome Actions

1. Sraddha (믿음) -In Buddhism, shraddha (Sanskrit) or saddha (Pali) refers to faith, confidence, or trust. It is a crucial element in the Buddhist path, particularly in the early stages of practice. Shraddha is not blind faith, but rather a conviction that arises from understanding and experiencing the teachings. It serves as a foundation for cultivating wisdom and moving towards enlightenment. 


2. Hri (자신의 행에 대한 책임감) (Sanskrit: hrīḥ; Pali: hiri) is a Sanskrit Buddhist term translated as "self-respect" or "conscientiousness". It is defined as the attitude of taking earnest care with regard to one's actions and refraining from non-virtuous actions. It is one of the virtuous mental factors within the Abhidharma teachings.



3. Apatrapya, in Buddhism, refers to a virtuous mental factor, often translated as decorum, shame, or consideration, which motivates individuals to avoid unwholesome actions out of concern for the disapproval of others. It is a sense of shame or embarrassment that prevents one from engaging in actions that would be considered wrong or inappropriate by those of good moral character. 


4. Alobha (무탐) is a Buddhist term translated as "non-attachment" or "non-greed". It is defined as the absence of attachment or desire towards worldly things or worldly existence. It causes one to not engage in unwholesome actions. It is one of the virtuous mental factors within the Abhidharma teachings.


5. Advesha (무진) is a Buddhist term translated as "non-aggression" or "non-hatred". It is defined as the absence of an aggressive attitude towards someone or something that causes pain. It is one of the mental factors within the Abhidharma teachings.



6. Amoha (무치) in Buddhism signifies a root of wisdom and embodies non-delusion, serving as a foundational principle that underpins wise actions and insights, reflecting clarity and understanding free from confusion. Wisdom or knowledge that dispels ignorance and leads to right understanding.



7. Virya (Sanskrit) or Viriya (Pali) 정진 translates to energy, effort, diligence, or enthusiasm. It's a key concept encompassing the vital force and perseverance needed for spiritual progress. Virya is considered a perfection (paramita) in Mahayana Buddhism and one of the five spiritual faculties in Theravada Buddhism. It's the determination to overcome obstacles and maintain focus on personal and spiritual growth. 



8. Prasrabdhi often translated as pliancy, flexibility, or alertness, refers to a mental factor that is crucial for both meditation and virtuous activity. It represents the mind's ability to be pliable and responsive, free from stiffness or obstruction, and is considered a wholesome quality.



9. Appamāda 불방일: Alertness, attentiveness, carefulness, non-laxity, earnestness, Diligence, vigilance, is considered as the foundation of all advantageous progress.



10. Upeksha 평정심, also known as equanimity, is a core concept in Buddhism, signifying a balanced and detached state of mind, free from attachment and aversion. It is one of the four immeasurables (brahmaviharas) along with loving-kindness, compassion, and sympathetic joy. Upeksha isn't about indifference, but rather a state of non-reactivity and even-mindedness, allowing one to observe experiences without being overwhelmed by them. 



11. Ahimsa 불살생, meaning "non-harming" or "non-violence," is a fundamental principle in Buddhism, emphasizing compassion and the avoidance of harm to all living beings. It's closely linked to the concept of karuna (compassion) and is considered an essential aspect of ethical conduct (sila). Ahimsa guides Buddhist practitioners in their actions, thoughts, and intentions, promoting a way of life that minimizes harm and fosters a sense of interconnectedness with all living things. 



Akusala - Unwholesome Actions

Akusala divides into two: klesa and upaklesa



Kleshas are mental states that cloud the mind, causing suffering and hindering spiritual progress. They are often described as afflictions, defilements, or disturbing emotions that obscure our perception of reality and lead to unwholesome actions. Essentially, they are the root causes of our discontent and dissatisfaction. 



1. Raga (탐) generally refers to lust, desire, or attachment. It's considered one of the three poisons (along with aversion and delusion) that hinder spiritual progress and liberation. Raga can manifest as a craving for sensual pleasures, material possessions, or even attachment to one's own views. 



2. Dvesha (진) is a Buddhist and Hindu term that is translated as "hate, aversion".



3. Moha (치) translates to delusion, ignorance, or illusion. It represents a fundamental misunderstanding of reality and the true nature of things, preventing a clear understanding of the Four Noble Truths and the path to liberation. Moha is one of the three poisons or root defilements in Buddhism, along with greed (raga) and hatred (dvesha), which are considered the source of suffering.



4. Māna (만) generally refers to conceit, pride, or arrogance. It is a mental state characterized by an inflated sense of self-importance and a tendency to compare oneself to others, often leading to feelings of superiority. This inflated sense of self can be a significant obstacle to spiritual progress and enlightenment. 



5. Mithyadrishti (견), refers to a wrong view or belief that leads to a distorted perception of reality. In Mahayana Buddhism, Mithyadrishti similarly describes misconceptions about time, self, and existence, contributing to ignorance.



6. Vicikitsa (의) (Sanskrit; Pali: vicikicchā) refers to doubt or uncertainty, particularly about the Buddha's teachings and the path to enlightenment. It is considered a hindrance to meditation and a mental defilement that obstructs spiritual progress. Overcoming Vicikitsa is crucial for developing wisdom and insight. 

 


Upakleśas (also spelled Upakilesa) refer to minor defilements or impurities of the mind, which hinder spiritual progress. They are considered less severe than the major defilements (kleshas) but still need to be overcome for liberation. 



1. Covetousness and Unrighteous greed(abhijjhā-visamalobha)



2. Krodha (분노 하는것) in Buddhism signifies anger, recognized as one of the ten significant defilements that trap the mind, highlighting its role in perpetuating mental afflictions and hindering spiritual progress.



3. Upanāha (한을 품는것) often translated as resentment, enmity, or vindictiveness, is a mental factor that hinders progress on the path to enlightenment. It's a form of holding onto anger and a refusal to forgive. 



4. Mrakśa (시치미를 떼는것) is a Buddhist term translated as "concealment" or "slyness-concealment". It is defined as concealing or covering up one's faults or uncommendable actions, from either oneself or others.



5. Pradāśa (폭언) is a Buddhist term translated as "spite" or "spitefulness". It is defined as an attitude based on fury/indignation (krodha) and resentment (upanāha) in which one is unable or unwilling to forgive; it causes one to utter harsh words.



6. Īrṣyā (질투) translated as jealousy or envy, is a negative mental state characterized by agitation and an inability to bear the success of others while desiring wealth and honor for oneself. It is classified as a form of anger (pratigha) within the Mahayana tradition. 



7. Macchariya (Pali) or mātsarya (Sanskrit) translates to stinginess 인색, miserliness, or avarice. It is a negative mental state characterized by an unwillingness to share possessions or resources with others, and a clinging to them. It is considered a hindrance to spiritual progress and a cause of suffering. 




8. Maya (Hypocrisy) primarily signifies illusion or the deceptive nature of reality, particularly concerning the material world. It represents the veil that obscures true understanding and leads to attachment and suffering.  



9. Satheyya 사기 - treachery, double-dealing



10. Mada (자만) refers to a mental state of self-satisfaction, self-infatuation, or mental inflation, often characterized by excessive pride or vanity stemming from attachment to one's own good fortune or possessions. It is considered a defilement or unwholesome mental factor that hinders spiritual progress. 




11. Atimāna (Arrogance) refers to conceit or exaggerated pride, which is considered a defilement or hindrance to spiritual progress. It is a form of māna, which generally means pride or conceit, but atimāna specifically indicates an excessive and inflated sense of self. This excessive pride can lead to disrespect towards others and contribute to suffering. 





12. Makkha refers to a negative mental state characterized by ingratitude, an inability to recognize kindness, and a tendency to downplay or deny the good deeds of others. It is considered a form of dosa (aversion or hatred) and can hinder spiritual progress by fostering a sense of negativity and resentment. 




13. Pamāda 방일 (Pali) or pramāda (Sanskrit) generally refers to heedlessness, carelessness, or negligence. It is a state of mind where one is not fully present, mindful, or attentive to the consequences of their actions, potentially leading to negative karma and hindering spiritual progress. It's the opposite of appamāda (heedfulness or diligence). 




14. Sārambha 싸움 (Pali; Sanskrit: Saṃrambha) refers to contentiousness, quarrelsomeness, or impetuosity, often involving anger and the potential for harm to others. 



15. Thambha (고집) in Buddhism, particularly in the context of Pali terms, refers to rigidity, hardness, or stiffness, and can be associated with mental factors like wrong views and conceit that create rigidity in the mind. It's also a characteristic of the mental body and consciousness that needs to be subsided for mental wellbeing. 




16. Viksepa (산란)is a Sanskrit term meaning distraction, mental wandering, or scattering. It is often used in Buddhist and Hindu philosophy, particularly in the context of yoga and meditation, to describe the mind's tendency to wander and be pulled away from a virtuous or focused objective. 




17. Anapatrapya (수치심을 모르는것) is a Buddhist term that is translated as "lack of propriety", "disregard", etc. In the Theravada tradition, anottappa is defined as the absence of dread on account of misconduct.



18. Styana (혼침) refers to sloth, lethargy, or mental dullness. It is considered a hindrance to spiritual practice, one of the ten "manifestly active defilements" (paryavasthana) that obstruct clear thinking and focus. Styana can manifest as a lack of energy, apathy, or a general feeling of heaviness that hinders progress on the path to enlightenment. 



19. Kausidya (해태) refers to laziness or spiritual sloth, a mental factor that hinders spiritual practice. It's characterized by a lack of enthusiasm for virtuous activities and a tendency to indulge in unwholesome actions like procrastination. Kausidya is considered a significant obstacle in both meditation practice and overall spiritual development. 



20. Incorrect asamprajnata (부정지) would refer to a state that is mistaken for asamprajnata samadhi, but is not actually the true, unconditioned state. 


Monday, June 23, 2025

4상[四相]

아상(我相 atman samjna) 이 몸이 나라는 생각

'아트만(atman)'에 근거한 견해로서 아(我) 혹은 자아(自我)라는 생각을 말하며, 여기서 ‘나’라고 하는 것은 나의 육신, 나의 주장, 나의 직장, 나의 사회적 위치, 나의 능력 등을 의미한다. 하지만 불교적 관점에서 볼 때 ‘나’라고 정의할 만한 것이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속성은 변화하기 마련으로 죽게 되면 모두가 해체돼버리고 육신도 결국 화장하거나 땅에 묻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깨닫고 나서, ‘우주의 모든 사물은 성주괴공(成住壞空)하고, 생각은 생주이멸(生住離滅)하므로 우주의 모든 것은 [나]라고 할 만한 것이 결국 없음’을 알았고, 그것이 제법무아(諸法無我)인 것입니다.

This view, based on the concept of "Atman," refers to the idea of "I" or "self." Here, "I" refers to my physical body, my beliefs, my job, my social status, my abilities, etc. However, from a Buddhist perspective, there is nothing that can be defined as "I." This is because such attributes are inherently changeable, and when we die, they all disintegrate, and the physical body is eventually cremated or buried, disappearing without a trace.

Buddha realized that ‘all things in the universe are subject to the cycle of formation, existence, destruction, and emptiness, and thoughts are subject to the cycle of birth, existence, separation, and destruction, so ultimately, nothing in the universe can be called ‘I’, and that is the non-self of all dharmas.

인상人相( pudgala samjna)내가 아니면 남이라는 생각

인상(人相)을 아상(我相)처럼 집착하는 모습의 하나로서, ‘남’을 의식하는 데에서 오는 행동과 생각이라 할수있다.

이와 같이 개아(인상)를 나와 남을 갈라놓는 분별심이라고 말하는 것은 뿌드갈라의 어의(語義)가 ‘개인’ 혹은 ‘인간’을 의미하는 개념이었기 때문에 그런 해석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어쨌든 개아는 ‘나’라는 아상(我相)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나와 상대에 대한, 혹은 내가 인간이라는 생각에 대한 분별로 보더라도 이것은 ‘나’라는 상이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아상의 연장이라 하겠다.

 즉, 개아는 진아(眞我)와 대비되는 아상으로서 진아를 찾는다는 것은 곧 자기(개아)를 버림으로써 가능한 것이고, 자기(개아)를 버림은 곧 망심과 분별과 집착을 버리는 심공(心空)을 말한다고 하겠습니다.

In Buddhism, "pudgala" (puggala in Pali) generally refers to the concept of an individual or person, particularly in the context of rebirth and the continuity of experience between lifetimes. It's a term that explores the nature of personal identity and the question of whether there is a permanent, enduring self or soul. 

衆生相(중생상 sattva samjna) 오온의 잠정적 화합에 불과한 자신이 실체로 존재한다는 생각.

The idea that oneself exists as a real entity, but is merely a temporary union of the five aggregates.

중생상은 깨닫지 못한 중생들이 가지는 본능적 집착을 일컫는데,

첫째, 괴로운 것을 싫어하고 재미있고 좋은 것만 탐내는 등 이기적인 행동이나 상념의 집착으로 나타나서, 좋은 것은 자기 것으로 하고, 나쁜 것은 남에게로 돌리려 함

둘째, 천당과 지옥이 따로 있다고 생각해서 천당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욕심으로 나타남. 

셋째, 약한 사람을 억누르고 강한 사람에게 빌붙는 약육강식도 중생상이고, 자기의 일에 지나친 욕심을 갖고 남을 이기기 위해 싸움.

넷째, 중생상은 자신의 몸이 오온(五蘊)이 화합해 이루어진 참된 실체라고 고집하는 잘못된 견해를 가짐.

중생상도 그 근원에서는 ‘나’라는 我相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다섯째, 나는 중생이니까 부처님과 같이 해탈할 수 없을 것이라는 스스로 퇴굴심(退屈心)을 내는 것이다. 이런 중생상은 열등의식이 바닥에 깔려 있어서인데, 초기 대승불교에서 sattva(중생)를 너무 강조하다 보니 중생은 부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실재가 있는 것처럼 돼버린 것 같다. 부처님께서 중생상을 갖지 말라고 하신 것은 중생들이 가지고 있는 이런 자기 비하적인 견해를 타파하기 위해서이다. 부처와 중생을 분별해서 자신을 중생이라고 생각하고 불도를 닦는데 게을리한다거나 불도를 닦아도 부처가 된다는 확신이 없는 이것이 중생상이다. 모든 중생은 그 자체에 불성을 가지고 있어 누구라도 수행을 통해 불성을 닦으면 성불할 수 있다는 것이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이요 견성성불(見性成佛)인 것이다.


Sattva samjna refers to the instinctive attachments of unenlightened beings.

First, it manifests as selfish behavior or obsessions, such as aversion to suffering and coveting only the pleasant and pleasantries. This manifests as a desire to keep good things for oneself and to attribute bad things to others.

Second, it manifests as a desire to be born in heaven, believing that heaven and hell are separate.

Third, oppressing the weak and clinging to the strong is also a form of survival, as is the law of the jungle. Excessive self-interest leads to fighting to overcome others.

Fourth, Sattva samjna holds the wrong view that their own body is the true entity formed by the combination of the five aggregates.

Fifth, it's the self-deprecating belief that, as a sentient being, one cannot attain liberation like the Buddha. This image of sentient beings stems from an underlying inferiority complex. 
Early Mahayana Buddhism's overemphasis on sattva (sentient beings) led to the assumption that sentient beings possess a fundamentally different reality from the Buddha. 
The Buddha's admonition against holding an image of sentient beings was to dispel this self-deprecating view held by sentient beings. 
Distinguishing between Buddha and sentient beings, thinking of oneself as a sentient being, being lazy in practicing Buddhism, or not being certain that one will become a Buddha even if one practices Buddhism - this is the image of sentient beings. 
All sentient beings possess Buddha-nature within themselves, and anyone can become a Buddha by cultivating Buddha-nature through practice; this is the realization that all sentient beings possess Buddha-nature (一切衆生悉有佛性) and seeing one's nature and becoming a Buddha (見性成佛).

壽者相(수자상 jiva samjna) 내가 영혼하게 존재한다는 생각.

오온(五蘊)은 모두가 실체가 없어 한시도 머물지 못하는 무상한 존재인데, 이를 바로 알지 못하고 그 속에 영생불멸의 윤회하는 주체로서 순수영혼이 있어서 오온은 사라져도 이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여기는 그릇된 착각을 하는데 그러한 착각을 수자상이라 한다.

부처님께서는 이와 같은 자이나교의 ‘순수영혼설’을 반박하기를,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인연에 따라 일시적으로 생겨났다 사라지는 허깨비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즉 제행무상(諸行無常)인 것이다. 따라서 생사를 초월하고 시간을 초월한 순수영혼이 실체로서 존재한다는 상에서 벗어나야한다.

이상과 같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라는 말들은 우리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잘못된 보편적 견해이기도 하므로 이러한 4상을 극복해야 비로소 해탈을 성취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리석은 중생이 어떻게 하면 4상(四相)이라는 분별과 집착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금강경> 해설의 최고 권위자인 육조(六祖) 혜능대사는 범부와 수행인을 구분해서, “4상(四相)이 있으면 중생이요, 4상이 없으면 부처”라고 했다.

이 말은 ‘마음이 미(迷 헤매다','헷갈리다')하면 중생이요, 마음을 깨달으면 곧 부처’라고 하는 말과 같으니, 결국 4상을 극복하는 길은 마음을 혼미(昏迷)하게 하는 망념을 극복해 정견(正見)을 갖추는 것이겠다.

그런데도 중생은 내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 아상을 가지고 있으므로 내가 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상대방이 생겨나고 그로부터 모든 만물이 생겨나 이 현상계가 만들어져서 다른 相들도 모두 이 我相으로 인해 비롯된다는 것이다.

즉, 인상, 수자상, 중생상은 아상의 다른 표현일 뿐, 4상이 각기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말입니다. 그 하나가 바로 아상(我相)이다. 

我相이 모든 상에 빠지는 근원이므로 아상을 여의지 못하면 범부(凡夫)이고, 我가 멸진(滅盡)되고, 모든 번뇌를 다 끊어버려서 참다운 무아(無我)가 되어야 해탈이 된다고 한다.

즉, 아상이 부서지면 모든 상(相)이 다 부서지고, 아상을 버리면 해탈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아상이 있으면 하심(下心)이 이루어질 수 없고, 하화중생(下化衆生)을 할 수도 없으며,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할 수도 없다.

The five aggregates are all impermanent entities that have no substance and cannot remain for even a moment. However, without properly understanding this, people mistakenly believe that there is a pure soul within them as an immortal, reincarnating subject, and that this soul will not disappear even if the five aggregates disappear. This mistaken belief is called the concept of jiva samjna.

The Buddha refuted this Jain doctrine of the "pure soul," stating that everything in this world is merely an illusion, arising and passing away temporarily according to causal relationships. In other words, all things are impermanent. Therefore, we must move beyond the notion that a pure soul transcends birth and death and time, and exists as a real entity.

As mentioned above, the words “atman samjna,” “pudgala samjna,” “sattva samjna,” and “jiva samjna” are the most erroneous universal views that we humans have, so only by overcoming these four images can we achieve liberation.

So how can foolish beings be free from the discrimination and attachment to the four aspects?

The Sixth Patriarch, Great Master Huineng, the highest authority on commentary on the Diamond Sutra, distinguished between ordinary people and practitioners, saying, “If there are four marks, it is a living being, and if there are no four marks, it is a Buddha.”

This is similar to the saying, ‘If your mind is lost and confused, you are a living being, but if you realize your mind, you are a Buddha.’ In the end, the way to overcome the four signs is to overcome the delusions that confuse the mind and attain right view.

However, since living beings have the illusion that they actually exist, the moment they think that they exist, the other person comes into being, and from that, all things come into being, this phenomenal world is created, and all other aspects also come from this atman samjna.

In other words, “pudgala samjna,” “sattva samjna,” and “jiva samjna” are just different expressions of the four aspects, and the four aspects are not different but one. That one aspect is the atman samjna (ego).

It is said that since the atman samjna (ego) is the root of all other forms, if one cannot let go of the ego, one is an ordinary person, and that one can only be liberated when the ego is annihilated and all afflictions are cut off to become truly selfless, a Buddha.

Heart Sutra

*반야심경은 성불하는 경*

*The Heart Sutra is the sutra that leads to Buddhahood*

§ 잃어버린 내 물건을 찾자

§ Find my lost belonging

겸우謙牛 선사가 법석에 오르자 정무 스님이 요령을 치시며 설법說法을 청하셨다. 목탁 대신에 왜 요령鐃鈴을 흔드신 것이냐고 나중에 정무 스님께 물었더니 모든 영가靈駕들도 함께 들으라는 것이라 하셨다. 우리 육신의 눈으로 확인된 대중 이외에도 눈에 안 보이는 많은 대중이 함께 있었다는 말이 된다.

화엄경[華嚴經]이나 법화경[法華經]을 설할 때 시방국토十方國土로부터 온 수를 알 수 없는 많은 보살, 천인, 아수라 등 대중이 함께 하였다는 표현들이 새롭게 스쳐갔다. 선사는 정좌를 하시고는 나지막한 소리로 입을 여시었다.

가깝지도 않는 곳에 이렇게 먼 길을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여기 오신 목적은 누구한테 무엇을 얻으려고 온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자기 물건을 찾으러 온 것입니다. 

불교佛敎는 본래의 자기自己 물건을 찾아주려는 종교입니다.

Buddhism is a religion that seeks to help people find their original true self.

각자가 자기 물건을 갖고도 자기自己 물건을 보지 못하는 것은 자기 눈을 갖고 자기 눈을 보지 못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자기 눈을 갖고 자기 눈을 봅니까? 여기서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아야겠습니다.

달마達磨 스님이 인도印度에서 중국에 오신 것은 불법을 구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불법을 전하러 오셔서 위법망구爲法忘軀[법을 구하기 위하여 몸을 버릴 각오]하신 것입니다. 소림굴에 들어 9년을 혼자 지내며 걸식乞食하셨으니 그 고통이 과연 어떠했겠습니까?

9년年을 입을 다무시고 벽만 바라보고 않아 계셨고, 밥을 얻으려 다닐 때는 발우鉢盂를 내밀고는 말을 안 했어요. 그래서 그 지방 사람들은 그가 벙어리인줄 알았어요. 혜가慧可 스님이 달마 스님에게 법法을 구하려고 찾아갔으나 만나주질 않았어요. 그래서 혜가는 밖에서 합장하고 달마 스님이 나오실 때까지 서 계셨어요.

달마達磨 스님이 뒤를 돌아보니 누군가가 이 추운 겨울날에 눈이 허리까지 찰 때까지 서 있기에 하도 딱해서, ‘무엇을 구하느냐?’고 물었지요. 그러자 혜가慧可는,  ‘감로의 문門을 열어 주소서, 중생을 제도하여 주소서.’라고 하셨어요. 그러자 달마는,

‘근기가 약하고 그릇이 작은 자는 몸만 고달픈데 그런 근기를 갖고 법法을 구할 것이냐고’ 되물었지요. 이 말을 들은 혜가 스님은 자기 팔을 끊어 보였어요. 이 때 달마 대사는, ‘과거 모든 부처님들이 모두 법을 구하기 위하여 몸을 버렸 거늘 네가 내 앞에서 팔을 끊어 바쳤는데 가히  법法을 구할만 하구나.’ 했어요.

겸우謙牛 스님은 게송偈頌을 하나 읊으시었다.

모든 부처님의 심법心法을 들어서 알 수 있겠는가? 남으로부터 얻는 것이 아니니라.

諸佛本來法印 聞不可得 非從人得

제불본래법인 문불가득 비종인득


내 마음이 지금 편치 않사오니 내 마음을 편케 해주십시오.

그 마음을 가져와라 그러면 편안케 하여 주겠다.

我心未寧 乞師與安心 將心來 與汝安

아심미영 걸사여안심 장심래 여여안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이미 너의 마음을 편케 해주었노라.

覓心了不可得 與汝安心竟

멱심요불가득 여여안심경 

바로 여기서 혜가慧可 스님은 깨쳤어요. 육조六祖 스님까지는 참선參禪해서 깨친 것이 아닙니다. 이같이 한 말씀 듣고는 깨달아 생사대사를 해결[見性]했어요. ‘내 마음이 지금 편치 않사오니 내 마음을 편케 해주십시오.’라고 하니. ‘그러면 불안하다는 네 마음을 내보여 달라.’고 하는 그 말 한 마디에 혜가[二祖]는 깨쳤어요.

마음을 찾아보되 형체가 없으니 이것이 무심無心아니요, 무심에 무슨 마음이 불편하겠어요. 달마 스님이  법을 전傳하러 오셔서 팔을 끊어 바친 혜가 스님에게도 자기自己의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주었지 다른 물건 같은 것 전해 준 것 없어요. 바로 이것이 불법佛法입니다.

부처님이 49년간 설한 법도 이러 할 뿐, 이 밖엔 다른 것 없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찾아주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반야심경』이야 말로 다른 것이 아니고 전부 잃어버린 자기 물건을 찾아주는 경입니다. 그래서 이름이 심경心經입니다.

선사는 잠시 말이 없으시다가 다시 게송을 읊으신다.

내게 한 권의 경전이 있으나 종이와 먹으로 된 경이 아니다.

경을 열어보니 한 자도 없으나 항상 대광명이 비치고 있다.

我有一經卷하니 不因紙墨成이라

아유일경권 불인지묵성

展開無一字나 常放大光明이라!

전개무일자    상방대광명

왜 내가 이 게송을 읊느냐 하면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경[經]이라는 겁니다. 마음 없는 사람 어디 있어요. 반야심경은 270자字인데 그 중에 무[無]자字가 21자나 들어 있어요. 무자無字가 거듭거듭 들어 있는 것은, 없는 것을 갖고 없는 것을 보여 주려니 그렇습니다. 이 심경은 옳게 설하고 옳게 들으면 성불成佛하는 경 입니다.

§ 제일 큰  보물이 뭐요?

§ What is the greatest treasure?

금강경[金剛經]과 반야심경[般若心經]은 똑같은 경입니다. 금강金剛이란 말과 반야般若라는 말만 다를 뿐입니다. 금강이란 보물 중의 제일이라는 것으로 금은 광석 속에 들어 있지요, 

우리들 각자 자신은 산山입니다. 인아산(人我山)이라고도 합니다. 이 자신 속에 들어있는 자성[自性]은 금과 같은 것입니다.

산에 있는 광석鑛石 속에 들어 있는 금은 캐내야 금이지 광석 그대로를 금이라 할 수 있겠어요? 광석을 부수고 금金을 찾듯이 내 속에든 본성本性을 찾아야 보물입니다. 찾지 못하면 보물이 아닙니다. ‘마하’는 크다는 말이고 ‘반야’는 지혜를 말합니다. 그런데 크다는 것을 봅시다.

세상에서 제일 큰 것은 무엇입니까? 지혜는 밝다는 것인데 세상에서 제일 밝은 것은 무엇이냐? 이것이 다 자신自身에 있기 때문에 자기自己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이렇게 질문하는 것입니다.

선사는 대중을 한번 둘러보시더니, 김 거사에게 묻는다.

“지혜 있으니 한 번 대답해 보시오. 무엇이 제일 크다고 하겠어요?”

“자기 자성은 삼라만상을 다 품을 수 있기 때문에 자성自性이 제일 큽니다.”

“그러면 밝은 것은?” 선사는 또 물었다.

“자기 자성 속에서 온갖 지혜와 광명이 나오니 자성自性이 제일 밝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다 같이 밖으로 보는 물건 중에서 무엇이 제일 큰가?”

“견체가 제일 큽니다. 큰 것 또한 모양과 그릇이 없기 때문에 자성自性이 제일 큽니다.”

“경찰이라 좀 달라! 뭐 조사하려 다니다 보면 지혜가 없으면 감춰진 것 찾을 수 없거든.”

김 거사가 경찰이라는 것을 알고 하시는 말씀이다. 대중 가운데 선사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데 흐뭇하신 모양이다. 선사는 말씀을 이어 가셨다.

반야다라 존자가 달마 스님을 찾아가서, 모든 물건 중에 어떤 것이 제일 큰가? 라고 물으니 ‘자성(自性)이 제일 크다.’라고 했어요. 다른 스님들은 허공이 최대라는 분도 있었어요. 그러나 자성은 허공이 몇 개가 들어가도 남는 것입니다. 허공은 제 이름자 하나도 못내 놓는데 우리가 말하기를 허공을 몇 개를 품는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선사는 게송을 읊으신다.

모든 물건 중에 어떤 것이 제일 큰가?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제일 크다.

於諸物中  何物最大  不起無上

어제물중  하물최대  불기무상

모든 물건 중에 어떤 것이 제일 높은가?

인아가 제일 높다.

於諸物中 何物最高  人我最高

어제물중 하물최고  인아최고  

여기서 말하는 인아[人我, 나]란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자마자 말씀하신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의 ‘나’입니다. 

인아는 각자 자신들 속에 다 들어 있는데 ‘그것을 못 보고 있다.’ 이 말입니다. 이것 찾아 갖는 법이 불법佛法이요, 이것을 찾아 가지면 각자가 천상천하유아독존인 동시에 영원히 죽지 않는 무한생명을 체득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말해서 인아人我가 최고라고 하는 것입니다. 달마 스님은 공부해서 깨친 것이 아니라 이렇게 깨쳐 갖고 나온 분입니다. 그래서 반야다라 존자가 인가印可해서 달마가 된 것입니다.

반야바라밀다심경이 바로 이것을 찾아주려는 것입니다.

밝은 것은 무엇이냐? 마음이요 자성이라 할 수밖에 없어요.

§  눈과 광명을 여의고 보는 놈을 보라

§ Look at the one who sees without his eyes and light.

나는 벌써 30년 전부터 이것을 보려면 눈과 광명과 현실現實을 여의고 보라고 했어요. 이것을 꿈으로 비유를 들었거든, 꿈이란 것이 눈과 광명과 현실을 여의었거든, 이것은 생각으로 보는 놈입니다. 눈감아도 세계 일주를 할 수 있고 모양이 없는 놈입니다.

생각으로 보는 놈은 멀다고 해서 시간이 더 걸리고 가깝다고 해서 시간이 덜 걸리는 것이 아닙니다. 저 미국이나 영국英國서 본 것을 생각해 보는데 시간이 더 걸리는 것 아니고 바로 문門밖의 것 생각하는데 시간이 덜 걸리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집에 돌아가셔서 이런 것 생각하여 공부에 이용토록 하십시오.

참선參禪 따로 없어요. 보는 놈 보는 것이 견성見性입니다. 

There is no need for Zen meditation. Looking at the one who sees is enlightenment.

모양을 여읜 놈, 현실을 여읜 놈, 이렇듯이 50년 산 사람이 50년 전前 것을 생각해 보나 여기 오기 바로 전前 것을 생각해 보나 걸리는 시간은 같아요. 한 생각 퍼뜩 일으키면 보는 것 아닙니까! 이것이 현실을 여의고 보는 것입니다. 

외국外國에 돌아다녔던 것을 보는 것이 곧 현실을 여의고 보는 것 아닙니까!

선사는 여의고 보는 예例를 계속 드신다.

여기 오기 전前에 자기 집에서 있었던 일 생각해 보는 것, 현실을 여읜 것 아닙니까! 

그렇듯이, 

무량겁 전 것이나, 바로 이 시간 전 것이나, 무량겁 후의 것을 생각해 보는 것이나, 다음 시간을 생각하는 것이나, 한 생각 퍼뜩 일으키면 봅니다. 바로 이놈을 보면 되는 것입니다.

겸우謙牛 선사는 다시 게송을 읊으셨다.

한 생각 마음이 무량겁이니 오고 감이 없네.

이와 같이 알면 삼세가 하나요, 생사가 본래 있는 것 아니니라.

一念服無量劫 無來亦無劫

일념복무량겁 무래역무겁 

如是了知三世欣然 生死去來本無

여시료지삼세흔연 생사거래본무

현실을 여의고 보는 놈을 보면 무량겁을 한 생각에 보니, 삼세(三世)가 둘이 아니다.

여기서 생사거래를 마치는 것입니다.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時無量劫]이 바로 이 소식을 보여준 것입니다.

§ 반야지혜로 본 오온은 이렇다

§ The five aggregates seen through the wisdom of Prajna are as follows:

선사는 지그시 눈을 감으시고 반야심경을 암송暗誦하셨다.

The monk, GyomWoo (겸우) closed his eyes and started reciting the Heart Sutra.


◇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摩訶般若波羅密多心經] 

◇ Maha Prajna Paramita Heart Sutra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密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是故 空中無色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시고 공중무색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無苦集滅道 無智 亦無得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무지 역무득

以無所得故 菩提薩埵 依般若波羅密多 故心無罣碍 無罣碍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 고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三世諸佛 依般若波羅密多 故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 고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故知般若波羅密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能除一切苦 眞實不虛 故說般若波羅密多呪 卽說呪曰 

고지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고설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3-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3번) 


암송暗誦을 끝내신 선사는,

마하는 크다. ‘반야’는 지혜, ‘바라밀’은 행[行]을 의미합니다. 

큰지혜로 성불하려면 행이 있어야 합니다. 행行은 마음을 갖고 하는 것이지 다른 것을 갖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관자재보살은 밖에 있는 보살이 아니고 각자 자신 속에 있는 보살입니다. 자신(自身) 속에 있는 자재(自在)한 마음입니다.

경계만 따라다니는 마음이 아니고 자리이타自利利他[자기도 남도 이롭게 함]와 보리군생菩提群生[중생을 널리 구제]을 위해서 남을 헤치지 않고 남을 위해 좋은 일만 하는 보살행을 하는 것이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입니다. 누구나 이러한 행行을 하면 모두 보살입니다.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문수보살만이 보살이 아니라 그러한 행行을 하면 여러분이 다 그런  보살인 것입니다. 각자 자신을 찾으면 각자는 삼세제불三世諸佛중 일불一佛[한 부처님]이 되는 것입니다.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密多時  照見五蘊皆空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공개공

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행 할 때 오온이 모두 공함을 관하여

오온五蘊이 무엇이냐? 색수상행식[色受相行識]을 말합니다.

색色은 무엇이냐? 눈으로 보는 삼라만상이 전부 색色입니다.

첫째로 여기서 말하는 이 색[色]은 눈으로 보는 색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모양, 소리, 냄새, 맛, 촉감, 생각]이 모두 색色입니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눈, 귀, 코, 입, 몸, 생각]의 상대相對 경계인 색성향미촉법이 모두 색色입니다.

둘째로 다음이 수[受]인데 만일 눈으로 보는 삼라만상만 색이라 한다면 수受라는 말과 맞지가 않아요. 눈으로 보는 것, 귀로 듣는 것, 코로 냄새 맡는 것, 입으로 맛보는 것, 몸으로 느끼는 것, 뜻으로 생각하는 것이 전부 색[色]이요. 이 모두 육문[六門]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셋째로 상[相]입니다. 받아들이면 생각합니다. 생각을 안 하려고 해도 생각납니다. 부딪칠 때마다 생각하면서 받아들이게 됩니다.

넷째로 행[行]이란 것은 무엇인가? 받아들인 것을 내보내고 안내보내고 하는 것은 행에 따라서 일으키는 알음알이입니다.

다섯째 식[識]이 일어납니다.

이것들을 오온五蘊이라고 해요, 왜? 오온이냐 하면 앞의 다섯 가지를 보따리처럼 쌌다고 해서 그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색色, 수受, 상相, 행行, 식識을 싼 보따리가 바로 각자 자신이란 말입니다. 보살행을 닦으려면 이것을 다 없는 것으로, 공[空]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살은 이것을 지혜의 눈으로 비추어 보아서 다 공[空]한 것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은 쉬운데 행行에 가서는 어렵습니다. 이것 공空한 것 설명이 필요합니다. 그 뜻을 모르면 『반야심경』을 천만 번 외워도 소용이 없어요.

§ 없는 것 보는 것이 견성이다. 

§ Seeing what cannot be seen (空) is enlightenment (seeing one’s true nature (自性)).

왜 공空한 것이냐? 눈으로 보는 ‘색色’부터 봅시다. 여러분 여기 오기 전에는 여기가 없었지요. 여기 와서는 다 각자 자기 집, 자기 고장이 없지요. 여기서 여읜 것, 여기에 와서는 여기가 나타났지만 여기를 떠나면 여기도 없는 것 아닙니까. 내가 떠나면 나까지도 없는 것 아닙니까! 이 없는 놈이 자기自己 물건입니다.

있는 것은 있기 때문에 바뀌고 생명生滅이 있는 것입니다. 없는 것은 없기 때문에 바뀌지 않고 생멸도 없습니다. 이것이 자기 물건이요! 진정한 자기自己이고 이것을 찾아 주자는 것이 곧 불성佛法이고, 이것을 보는 것이 곧 견성[깨달음]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있는 것만 보고 없는 것은 못보고 있어요. 바깥과 남의 경계만 따라다니느라 바쁘기만 하고, 물질의 노예[奴]노릇만 하고, 진실로 없는 자기 물건은 못 보니 답답한 것 아닙니까!

선사의 목소리는 80대 노인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넘쳐흐른다.

다음은 귀로 듣는 것, 귀는 모든 소리를 여읜 것 아닙니까? 여러분 수원水原서 듣던 소리는 여기 함양咸陽에 와서는 한 마디로 없지 않습니까? 여기 와서는 내 소리, 목탁소리, 종소리 듣고 있지만 여기를 떠나면 모두 없는 것 아닙니까? 소리는 났다가 곧 없어지지만 듣는 몸은 없기 때문에 어디를 가도 없어지질 않습니다.

이 놈은 현실現實을 여읜 놈 이기 때문에 우리 몸이 천만 번을 죽어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여기 나온 것도 이것을 찾아주기 나온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나올 까닭이 없어요. 여러분도 이것을 조금이라도 인식(認識)하기 위해서 여기를 찾아온 것이지 그렇지 않고서는 무엇 하러 새벽바람 쏘이며 이렇게 멀리 천리 길을 찾아오겠습니까?

냄새도 그렇지 않아요? 똥은 구려도 똥 무더기를 여의면 똥 냄새는 없어집니다. 그러나 이 없는 놈은 없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공[空]입니다. 관자재보살은 이것을 잘 조절한다는 것입니다.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응당 머물 바 없는 텅빈 곳에 머무는 마음]이라는 ‘금강경’의 말씀도 이 뜻입니다.


§ 자성(自性)이 진정한 보물이다

§ One’s true nature (自性) is the one's real true treasure

이 없는 것은『금강경』에서 말했듯이 상[相]을 떠나야 알 수 있는 자리이며, 우리가 이것을 찾아 가자면 금강석보다 훨씬 귀한 보물을 갖고 사는 것입니다. 또 이 몸은 무한한 광명光明의 지혜를 내는 보물단지입니다. 그 보물을 ‘마하반야’라 하지요, 무한히 큰 지혜광명이란 말입니다. 어찌 찾지 않을 수 있겠어요.

사상[四相]이란 말이 있는데, 아상我相[이 몸이 ‘나’라는 생각], 인상人相[ ‘나’ 아니면 ‘남’이라는 생각], 중생상衆生相[세상일에 집착함], 수자상壽者相[오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말하지요. 이 사상四相을 떠나야만 자성을 볼 수 있어요.

이는 마치 순금이 흙 속에 묻혀 있으나 흙을 털어내고 잡석을 제거해야 드러내는 것과 같아요. 돌 속에 묻혀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소. 흙에서 캐내고 정련精鍊을 해야 금金의 가치를 갖는 것과 같이 내 속에 본래 묻혀 있는 자성自性을 드러내야지요.”

 선사는 대중을 살피시더니 김 거사에게 또 질문을 던지신다.

 “세상에서 허공보다 큰 것이 무엇인지 일러 보시오.”

 “자성自性이라 합니다.”

 “어째서 그렇소?”

 “자성인 마음은 허공, 삼라만상을 다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 바로 일렀어요, 지혜가 밝은 사람이라 제대로 일렀구먼. 이 자성自性이란 것이 내 속에 들어있는데 이것을 알면 천상천하유아독존이야. 달마 스님도 이 도리道理를 알고 깨쳤으니 9년간 굴 속에서 지내실 수 있었던 것이지요.”

 “깨치고 난 자성은 어떠하냐?” 선사는 자문하시면서,

 “말로 짐짓 표현하자면 밝음이야. 지혜의 밝음이야!”

선사는 다시,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빛이 물체物體에 닿으면 이 눈이 물체로부터 반사되는 광光을 인식認識하는 것인데, 광명이 없다면 볼 수 없는 것이요. 눈을 여의고도 못 보는 것이요. 보는 대상對象이 사라져도 못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를 모두 여의고도 보는 놈이 있어요. 이 보는 자, 보는 대상을 여의고도 깜깜한 암흑暗黑의 한밤중에도 보는 놈이 있어요, 생각으로 보는 놈이 있지 않나요, 현실을 여의고 보는 일념(한 생각 일으키는 놈)이 있어요. ‘그 놈은 무량겁 전에도 있었고 무량겁 후에도 있었다.’ 이것입니다.


§ 자성을 보는 법을 들어보시오 

§ Listen to me how to see one's true nature (自性).

겸우 선사는『반야심경』의 첫머리를 읊으신다.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密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공개공  도일체고액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이 반야의 대 지혜로이 몸을 보니 모든 고액으로부터 벗어났도다.

이 경經은 마음, 자성 자리를 보게 하는 경인데, 자성은 내 자신 속에 있어요. 어떻게 해야 내 속에 있는 이 놈을 볼 수 있느냐? 이 자성은 아상我相을 버려야 볼 수 있어요, 그러려면 우리 이 몸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우선 이 몸뚱이, 오온五蘊으로 된 우리 몸인 오온五蘊 보따리를 공空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보살은 실제로 공으로 보고 있어요.

겸우 선사는 청중을 둘러보시고는 오온이 없는 것을 관찰하는 방법을 설명해 주셨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인 이 오온五蘊을 이용해서는 없는 자리로 들락날락,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아무 것도 없는 것을 살피면 초初 견성은 할 수가 있어요.


§ 전체는 어둠을 봅니다.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사리자여, 색이나 공이나 다르지 않고 공이나 색이나 다르지 않다.

색을 대하는 것이 곧 공을 대하는 것이고

공을 대하는 것이 곧 색을 대하는 것이다.

여기서 ‘사리자舍利子’는 지혜 제일이라 부르기도 하는 부처님의 십대제자 중의 한 분이나, 각자의 자성自性 속에 있는 지혜를 일컫는 지혜의 대명사이지요. 육조단경[六祖壇經]에서는 ‘선지식善知識’이라는 말을 썼지요. 모두 같은 뜻이라고 보면 됩니다.

여기 모인 여러분 모두 지혜를 갖고 계시지요, 그 많고 적음은 불문不問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선지식善知識’입니다. 세상 물정을 안다는 것도 지혜 아닙니까?

세상 물정에 대해서야 여러분이 나보다 10배, 100배 뛰어나지요. 아마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로는, 나 같은 사람은 없을 거요. 나는 외국어 한 마디도 몰라요. 에너지가 무엇인지, 퍼센트가 뭔지 몰라요. 그래서 어느 날 정무 스님에게 좀 가르쳐 달라 했더니, 말로 뭐라고 일러주는데 이 늙은이 기억할 리 있겠소.

정무 스님을 바라보시며 싱긋이 웃으신다.


▷색불이공 공불이색[色不異空 空不異色]

Form 色 is not different from emptiness 空, emptiness空 is not different from form 色.

이것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살리고 죽이는 도리가 여기에 있어요, 이것을 알면 견성見性이요, 모르면 화두話頭로 삼아야 해요.

You must understand this correctly. It is like life and death depending on whether you understand it correctly or not. If you understand this, you have seen your true nature, enlightenment. If this is unclear, you must make it the Koan (話頭) of your meditation study. 

요새 ‘반야심경’을 보면 ‘물질이 곧 허공’이요. ‘허공이 곧 물질’이라 내 놓았는데 이것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이렇게 하면 보는 놈을 죽여 놓는 것이 됩니다. 태양도 태양을 둘러싼 허공도 이 ‘반야심경’에서는 물질입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모두 물질物質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제일 큰 것을 말해보라면 허공虛空, 태양太陽, 대지大地를 들겠지요, 그런데 보는 놈은 이 세 가지를 하나로 봅니다.

여러분, 이 세 가지를 따로 봅니까? 보는 눈이 다릅니까? 다르다면 이것을 보는 눈은 쪼개 보아야 할 터인데 쪼갤 수 없다면 보는 눈은 하나 아닙니까!

하나인 이것을 견체[見體]라고 합니다. 제일 밝다고 하는 태양까지도 이 보는 견체에는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밤에는 태양이 없지요. 견체에 태양이 있는 것이라면 견체見體에 빛이 있어야 할 터인데 없기 때문에 밝은 대신 어둠을 보는 것입니다.


§ 이것이 곧 색즉시공色卽是空 이다.

§ This is what is meant by “Form is emptiness.”

세상에서 제일 밝은 것은 눈과 광명과 현실을 여의고 보는 것이 제일 밝다고 했는데, 어둡고 밝은 것이 둘이 없는 것이 제일 밝은 것입니다. 태양은 밝은 것이 있기 때문에 어두운 것은 못 나타내고 허공은 어둡기 때문에 밝은 것을 못 나타냅니다. 그런데 보는 놈은 어둡고 밝은 놈을 한꺼번에 나타내기 때문에 제일 밝은 것입니다.

이것은 어둡고 밝은 것이 둘이 없기 때문에 어둠을 대對하면 어둠을, 밝음을 대對하면 밝음을. 어둡고 밝음을 함께 대對하면 함께 봅니다. 어둡고 밝음이 둘이 없다면 없는 것까지도 나타냅니다.

이 놈이야 말로 제일 밝고 제일 큰 것입니다. 그래서 달마 스님은 법해法海 스님에게 ‘어떤 물건이 제일 크냐?’라고 물었을 때 ‘법성法性이 제일 크다.’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서 ‘무엇이 가장 밝은가?’라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이것을 공부에 이용하도록 하십시오.

보는 놈을 보려면 화두話頭 소용없어요.

이것이 어떤 놈인가? 이것을 보는 것이 견성법[見性法]이지 다른 길 없어요. 화두 달라고 할 필요 없어요. 그래서 물질이 곧 허공이고 곧 허공이 곧 물질이라 하면 ‘반야심경’을 죽여 놓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허공이 아무리 크지만 제 이름자 하나 짓지 못하지 않습니까!

이들의 이름 하나 지어 불러주는 것이 법성[法性]입니다.

이 법성에는 허공, 태양이 둘이 없이 공한 것입니다.”

이때 겸우 선사는 법상法床에 주장자를 곧추세우면서

“잘 보시오.”

여기 주장자柱杖子를 보는 놈과 허공을 보는 놈이 따로 있습니까? 보는 놈 견체가 허공을 따로 보고, 주장자를 따로 봅니까? 주장자를 보는 견체見體나 허공을 보는 견체나 같지 않습니까!

마치 우리 눈으로 허공, 태양, 대지를 한 눈으로 같이 보는 것과 같이, 보는 견체見體는 같은 것입니다. 쪼개려고 해야 쪼갤 수 없습니다.

그러니 보는 견체見體에는 허공을 보는 놈이, 곧 이 주장자柱杖子를 보는 놈입니다.

보는 놈에는 허공과 물질이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색이 곧 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色不異空 空不異色].

물질이 곧 공空이라 하면 이 보는 놈[주인]을 죽인 것입니다.

이것[보는 놈]이 바로 자기 물건이며 이것을 보아야 견성이지 못 보면 견성 아닙니다. 


▷수상행식 역부여시[受想行識 亦復如是]

여기서 수受는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소리[聞, 聞體]의 경우를 예로 드신다.

소리는 듣는 놈이나 소리를 안 듣는 놈이나 다르지 않아요. 소리를 듣는 놈이 곧 소리이고 소리가 곧 듣는 놈입니다. 냄새[香,臭]도 그래요. 냄새를 맡는 놈이나 안 맡는 놈이나 둘이 아니요, 생각하는 놈과 생각하지 않는 놈 역시 둘이 아니요, 맛있을 때나 없을 때나 맛보는 놈이 각각 따로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딪치면 아픈 놈, 아플 때 그놈, 그놈이 그놈 아닙니까! 생각 일으킬 때, 안 일으킬 때 역시 같은 놈입니다. 생각이란 생각 없던 데서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고 생각을 여의면 본래 생각 없던 그 자리로 돌아갑니다. 그러니 생각 있던 놈과 생각 없던 놈이 둘이 아닙니다.


§ 이것이 불생불멸인 공空한 놈이다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사리자여, 세상의 모든 법도 공하여 나지도 사라지지도 않고 더럽고 깨끗함도 없다.

공空은 없다는 말입니다. 모든 법의 공(空)한 모양은 없기 때문에 남도 없고[不生] 멸함도 없어요[不滅]. 없는 것(無)에 어찌 남(生)이 있고 멸(滅)이 있겠어요. 모양 없는 허공에 어찌 남(生)이 있고 멸(滅)함이 있겟습니까! 

자 이것도 비유를 들어봅시다.

태양은 하나입니다. 태양은 이 세상 온갖 유정[有情, 생명이 있는 것] 무정[無情, 생명이 없는 것], 삼라만상을 나투지만 태양빛 자체에는 이런 것들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도 없기 때문에 생멸(生滅)이 없다는 것입니다. 태양광太陽光 자체가 생멸하는 것 보셨어요?

밤에는 태양빛이 없어진 것 같지만 지구 반대쪽에 있을 뿐 사라진 것이 아니다.

또 태양빛 자체를 더럽힐 수 있겠으며, 더럽힐 수 있는 자 있겠어요! 그러니 공空한 상은 불생불멸不生不滅 불구부정不垢不淨[더럽고 깨끗함이 없다]입니다. 허공, 태양, 모두 더[增]하고 감[減]함이 있겠습니까! 태양과 허공을 보는 견체에는 더하고 감함이 없습니다. 하기야 태양도 계속 활동하여 변화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어디까지나 비유로 든 것입니다.

是故 空中無色

시고 공중무색

그런 고로 없는 데는 색이 없는 것이니

공중무색(空中無色)이란 공空 중에 색色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허공 속엔 삼라만상도 없다고 해야 할 것 아닙니까! 허공과 삼라만상을 보는 자성自性에 있는 자성 진공眞空을 말합니다. 보는 눈에는 한 모양도 없는 그놈, 소리 듣는 귀에는 한 소리도 없는 그놈, 냄새 맞는 코에는 한 냄새도 없는 그놈, 맛을 보는 혀에는 한 맛도 없는 그놈, 이 모두 하나도 없는 공[空]을 말합니다.

여러분! 이 공空을 여러분들이 모두 갖고 여기 앉아 있어요! 지금 여기 법당에서는 맛도 종소리도 없으니 그 공을 여러분이 다 갖고 있는 것입니다. 말을 바꾸면 자성공[自性空] 속에는 색色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색이 없을진데 어찌 수상행식受想行識이 있겠어요. 그러므로 무수상행식이 되는 것입니다.

無受想行識

무수상행식

받아들이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알음알이를 내는 일도 없고 눈으로 보이는 세계도 없고 보이지 않는 의식의 세계도 없다.

지금부터는 무無자가 계속 나오는데 한 마디로 끝낼 수 있는 것을 중생들이 한 마디 갖고는 알아듣질 못하니까 자꾸 이름을 지어 보이는 것입니다.

선사께서는 청법 대중에게 거듭거듭 말씀하시고는, 나도 여러 말을 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보여주는 것 아닙니까!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육근[六根: 눈, 귀, 코, 입, 몸, 뜻]도 없고 육근 경계[모양, 소리, 향, 맛, 촉감, 생각]도 없는 것이니

하열한 근기는 상[相]에만 집착하고 있으니 여기로 들어가기 힘들어요. 그러나 우리 앞에서 안이비설신의 색성향미촉법 모두 공空과 다르지 않고 본래 없었던 것이라는 것, 본래 없는 그 자성自性을 갖고 있다는 것, 그것과 꼭 같은 도리입니다.

여러분, 이 몸뚱이는 이 시간 있다가 다음 시간에는 보증할 수 없는 물건 아닙니까! 조존석망[朝存夕亡 아침에는 있다가 저녁에 없어짐]이라, 우리의 생명이 짧든 길든 간에 이 세상 나오기 전에 이 몸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대중을 둘러보시더니,

“아니, 전 교수가 내 목전에 앉았네!”

선사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며 하시는 말이다. 나는 선사의 설법을 녹음하느라고 석유난로 뒤편에 앉아 있었으니 내가 안 보였던 모양이다. 나는 사실 나한테 무엇을 물어 올까 겁이 났다.

 “내 한 번, 전 교수한테 물어 봐야지.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이 몸이 간 후에는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없습니다.”

 “이 세상 떠나기 전과 이 세상 떠난 후의 것과 같습니까, 다릅니까?”

 “같습니다.”

 선사는 말씀하시기를, 

이것을 보면 천만 년을 가도 안 없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만 번 죽어도 이 놈은 없어지지 않는 놈이요. 이것을 보여 주자는 것이 불법佛法이요, 이것을 못 보면 불법 만난 보람이 없습니다. 이것을 각자 찾아 가지면 이 세계가 천지개벽을 몇 번을 해도 이것은 없어지지 않아요.

천지개벽天地開闢, 대천이 구괴[大天具壞우주의 멸망]할 때 이 몸이 주住 할 곳을 찾아 놓아야만 불법 만난 보람이 있는 것입니다. 대천구괴 할 때 자기의 주처住處[머물 곳]가 없다면 무량겁이 다하도록 어떻게 살아가겠느냐? 이 말입니다.

불법이란 이렇게 깊고 깊은 것이며, 얕다면 바로 자기가 보는 곳에 있어요. 그 얕은 곳이란 일념불기처[一念不起處]입니다. 안이비설신의 무안계무의식계에도 있습니다. 이 몸은 사대[地水火風]로 이루어진 것, 육진신식주본래공六塵身識住本來空[안이비설신의가 머무는 곳이지만 본래는 없는 것]이라.

無無明亦無無明盡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무무명역무무명진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무명도 없고 무명이 다함도 없으며 늙어 죽음도 없고 노사가 다함도 없으니

“어둠도 밝음도 없는 것이 가장 밝은 것이라(어둠과 밝음을 함께 보는 것) 앞서 말하지 않았어요!” 

선사가 석남사 대각전에서 설할 때는 보다 구체적으로 설하셨다.

사실『반야심경』에는 무명진無明盡이라 했지만 암[暗]자를 하나 더 넣어서 무명암무무명암진[無明暗 無無明暗盡]이라 하여야 정확합니다. 태양이 지고 어두워지면 그 어둠을 보는 놈이 있으니 의당宜當 밝음과 어둠을 함께 말해야 합니다.

늙음, 늙어 죽어 다함도 없다. 사람이 꼭 늙어야 죽습니까! 젊어서 죽기도 하고, 이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죽는 사람도 있고, 아예 어머니 뱃속에서 죽는 사람도 있으니 무생노사[無生老死]라 해야겠지요. 노사가 없는데 무슨 고집멸도[苦集滅道]가 있겠는가! 이 말입니다.

無智亦無得

무지역무득

지혜도 없고 얻을 지혜도 없다.

“가장 밝음이 자성인데 자성은 이미 각자 갖춰져 있는 것, 어디 밖에서 구하랴.”

以無所得故

이무소득고

본래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앞서 달마가 혜가에게 이른 말을 기억하시지요.’라고 하시면서 혜가 스님이 달마 스님으로부터 법을 구하고자 할 때 ‘네 속에서 구하라’는 말씀을 상기 시키셨다.


§ 본래무일물 이란 말이 이것입니다.

안이비설신의 육근[六根 六門]에 대하여 좀 더 설說할 것이 있습니다. 육조 스님이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 하신 말씀이 불자佛子들에게 도무지가 통하지가 않아요. 육조 스님의 이 말씀을 좀 더 쉽게 설명하여야겠어요. 안의비설신의 육문에 본래무일물을 합일[合一]시킬 수 있어요

본래무일상[本來無一相], 본래무일성[本來無一聲], 본래무일미[本來無一味], 본래무일촉[本來無一觸], 본래무일법[本來無一法]이 있습니다.

눈으로 삼라만상을 다 보나 눈 감으면 하나도 보이지 않으니 본래무일상[本來無一相]입니다. 귀로 듣던 온갖 소리 여기 법당法堂에 오니 차車 소리도 없지요. 여기 지금 설법하는 내 소리마저 없으면 한 소리도 없지 않아요. 이것이 본래무일성[本來無一聲]입니다.

향, 맛, 생각 모두 똑같은 이치입니다. 향, 맛, 생각하는 놈에는 본래무일물, 본래 없던 것, 이것을 보면 견성見性입니다. 다른 것 없어요. 화두 갖고 참선하려고 수고 할 것도 없어요. 그래서 나는 오늘 이 『반야심경』은 견성시키는 경이라고 자신을 갖고 설說했는데 알아 들으셨는지? 

지금은 음식을 먹지 않으니 한 맛도 없는 본래무일미[本來無一味]요, 내 몸을 누가 건드리지 않으면 본래무일촉[本來無一觸], 또 경계에 따라 한 생각도 안 일으키면 본래무일법[本來無一法]입니다. 이렇게 안이비설신의 육근六根에도 본래 무일법이 있어요.

육조 스님은 이것을 통해서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믿지 않고 심지어 반대하는 사람까지 있어요. 반대하는 사람만 없어도 잠자코 있겠는데 이것을 못 본 사람은 그대로 넘어가겠지만, 이것이 자기 물건이고 중생의 물건이며 동시에 제불諸佛의 물건인데 어찌 그대로 묻어두겠느냐 말입니다.”

萬法歸一 一歸何處

만법귀일 일귀하처

만법은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가는가.

이 화두를 몇 번을 설해도 알아듣는 사람이 없어요, 여러분! 각자의 안이비서신의에 만법귀일처[萬法歸一處]가 만법출생처[萬法出生處]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눈을 떠 삼라만상森羅萬象을 보면, 이것이 만법萬法 아닌가요! 눈 한 번 감으면 모든 것 없어지고 보는 견체見體로 돌아가지 않나요!. 또 눈 뜨면 다시 삼라만상이 나타나지요. 이것이 만법출생처[萬法出生處]라!. 바로 이것입니다. 얼마나 가깝습니까!

듣는 소리도 귀만 열면 온갖 소리 다 들리다가 귀만 막으면 한 소리도 없고, 본래 듣는 놈으로 돌아가니 만성귀일처[萬聲歸一處]요, 코로 온갖 냄새 다 맡다가 코만 막으면 한 냄새도 없이 냄새 맡는 그놈으로 돌아가니 만향귀일처[萬香歸一處]요, 다시 코를 열면 온갖 냄새 다 나니 만향출생처[萬香出生處]라.

먹는 것도 같아요. 먹을 때는 온갖 맛이 다 있는데 입 다물면 한 맛도 없고 맛보는 놈으로 돌아가고 음식을 씹으면 온갖 맛이 다 생기니 만미귀일처[萬味歸一處] 만미출생처[萬味出生處]라.

촉[觸]도 만촉귀일처[萬觸歸一處] 만촉출생처[萬觸出生處]입니다.

법[法]도 그래요, 한 생각 없는 일념불기처에 들어가면 한 법法도 없는 것 아닙니까! 일념불기처에 들어가면 육근六根으로 설한 만법귀일처가 일념불기처[一念不起處] 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상대 경계를 따라 일어나는 것이니 만법출생처萬法出生處이며, 한 생각도 일어나기 전의 그곳이 일념불기처, 만법귀일처萬法歸一處입니다.


§ 열반은 영원한 삶을 말한다.

§ Nirvana means eternal life.

以無所得故 菩提薩埵 依般若波羅密多 故心無罣碍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 고심무가애

無罣碍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보살은<반야바라밀다>를 의지 하므로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서 뒤바뀐 헛된 생각을 아주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니

많은 분들이 열반涅槃을 죽었다는 말고 알고 있는데 불생불멸의 영원한 생명체를 얻는 것을 열반이라고 합니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을 천상의 달 하나에 비유한 바 있지요.

이 열반체涅槃体를 체득하고 보면 생사열반生死涅槃이 상공화常空和(하나가 됨)가 되는 것입니다. 천상天上의 달은 열반체이고 천강월千江月은 생멸처生滅處입니다.

비유를 들지요. 천상의 달을 여의고는 물 속의 달이 안 나타나니 생멸生滅이 있는 물 속의 달과 생멸이 없는 천상의 달과 생사거래가 상공화常空和아닙니까! 과거 현재 미래를 지배하는 태양 자체는 생멸이 없는 것이나 단지 자전自轉하는 지구地球에 따라서 뜨고 지는 생멸이 보이니, 생멸 없는 태양 없이는 어둠과 밝음의 생멸이 없지 않아요!

파도의 경우 바닷물은 열반체요, 파도는 바람 따라 생멸하는 것, 바다 없이 파도 있겠소? 서로 상공화常空和 아닙니까!

날마다 출몰出沒하는 태양도 자전하는 지구에서 보기에는 생멸이 아닐 수 없지만 태양 자체는상주 불멸하는 열반체[佛性]이니 이것 또한 생사열반 상공화입니다.

여러분! 각자 삼라만상을 바라보면 바깥 경계境界가 생멸하나 보는 놈은 생멸이 없지요.

여러분 자체는 열반체요, 보는 놈과 삼라만상은 상공화常空和입니다. 안이비설신의 육근六根이 모두 상공화常空和입니다.


三世諸佛 依般若波羅密多 故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故知 般若波羅密多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 고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고지 반야바라밀다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能除一切苦 眞實不虛 故說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고설

般若波羅密多呪 卽說呪曰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娑婆訶

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도 이 <반야바라밀다심경>에 의지하여 성불하였다.

고로<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신비한 주문이며 가장 밝은 주문이며 더 할 수 없는

주문이며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는 주문으로 진정 모든 고액을 없애주느리라.

고로 <반야바라밀다 주>를 설하노니<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께서도 모두 보는 자기自己의 자성自性을 보아 깨달으신 것입니다.

거듭거듭 말씀드리지만 이『반야심경』이야 말로 바로 알고 깨치면 부처가 되는 경입니다.


§ 불자들에게 당부當付

선사는 '반야심경'의 해설을 마치시고는,

앞으로 한마디 부탁말씀 드리겠습니다. 나는 일생 동안 환갑, 진갑잔치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모르고 토굴 속에서 지내고 있는데 작년에 생각해 보니 ‘앞으로 이제 갈 날은 가까운데 생일이나 좀 알리고 생일법공양生日法供養을 한 번 시키고 가야겠다’ 해서 작년에 알렸지요. 올해도 안 나온다고 했지요.

내 생일 대신 저 양로원養老院에 가서 공양 한 번 올려라 했지요. 그런데 각지에서 일 년에 한 번씩이라도 만나야 한다고 해서 오늘 나왔어요. 중은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영원한 생명을 찾으려고 출가한 몸인데 생일잔치를 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내가 귀중하게 여기는 것은 내 출가出家날입니다.

음력 2월8일 당시 29세 때 가족을 버리고 배낭 하나 걸머지고 산 속으로 들어갔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부처님 출가도 29세 2월 8일로 같아서, 아마 내가 불교와 인연이 있나 보다 했지요. 나는 부끄럽지만 그래도 이런 말 해 주는 스님도 흔치 않아 나와서 한마디 한 것입니다.

이치理致를 알아들었으면 각자 자기 공부를 해야지 귀동냥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오시지 말고 자기 집에서 본래면복本來面目을 찾는 공부를 하셔야 합니다.

선사께서 다시 게송을 읊으신다.

空手來 空手去 百年貪物一朝塵 今聞一法 無價寶

공수래 공수거 백년탐물일조진 금문일법 무가보

I came empty-handed, and I will leave empty-handed. A hundred years of greed turned into dust in a day. But now I hear a Dharma that will stay as a priceless treasure forever.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것, 백 년 동안 탐하여 쌓은 것 아침 이슬과 같고, 오늘 들은 한 법은 값을 치를 수 없는 보배니라.

이 세상에 올 때 누구 하나 한 물건이나 갖고 왔습니까?

갖고 온 것 있으면 여기 대중大衆 앞에 내놓아 보시오.

이 몸뚱이도 없었고 한 생각 무명업장(無明業障 어리석은 행)을 일으켜 부정모혈(父精母血 부모님의 정자와 난자)의 시주를 얻어 가지고 나온 놈, 그러니 이 몸 까지도 자기 물건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 세상 떠나갈 적에는 자기 집에 온갖 보화寶貨 가득히 쌓아 놓아도 한 물건도 갖고 가지 못하잖아요.

은행銀行에 몇 천만, 몇 억 원 있다 해도 갖고 갈 수는 없잖아요. 자기 가족도 따라나설 수 없는 것입니다. 비록 따라나선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요즘 사람들 보면 뭐하러 탐심貪心부리는지 모르겠어요.

여기 교수님도 있으니, 자기 월급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행복한 것입니다. 그것도 학생들 덕분에 이렇게 이 자리에서 밥 벌어먹는다고 고마운 생각을 가져야지. 그 이상 탐욕을 부려서는 안 됩니다.

백년탐불일조진[百年貪物一朝塵]이라. 100년年 탐貪한 것 하루아침의 먼지요, 이 몸 갈 적에 먼지만 남기고 가지만 오늘 들은 이 일법一法(반야심경 설법)은 세세생생 무가보無價寶(값을 칠 수 없는 보배)입니다.

여러분! 허공, 태양, 대지를 얼마로 값을 칠 것입니까? 서울서는 땅 한 평에 천만 원대를 호가呼價하는 곳이 있다던데 이 지구를 통째로 줄 테니 이 몸 하나와 바꾸자면 바꿀 수 있겠습니까! 자기 몸뚱이가 제일 소중한 것입니다. 허공, 태양. 태지 이 모두를 한꺼번에 다 준다고 해도 이  『반야심경』과는 못 바꿉니다. 그러니 오늘 설한 이 법문은 무가보[無價寶]입니다.


§ 꽃 한 송이씩 드립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께 세계일화世界一花, 꽃공양을 하려 합니다.

부처님 당시도 1,250대중에게 꽃공양[花供養]을 보여 주었어요.

眼嘟 一光이 呑眼光이니 森羅萬象이 眼中花라

안도일광     탐안광        삼라만상   안중화 

世界一花가 開眼中이니 眼光無處에 不開花라

세계일화   개안중         안광무처    불개화

눈 빛 하나 속에 모든 것이 담기니 삼라만상이 눈 속의 꽃이라,

세계일화란 이름의 한 송이 꽃이 눈 속에 펼쳐지는데

이 눈빛 닿지 않는 곳에는 꽃이 피지 않네!

삼라만상森羅萬象이 이 눈동자 속에 들어 있어요. 세계일화世界一花를 지적하라고 하면 무엇이겠어요? 삼라만상을 낳게 한 태양 광명光明이 아니겠어요. 이 태양까지도 눈 속에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눈만 뜨면 각자의 안광眼光속에 다 있는 것입니다. 춘하추동 언제나 눈만 뜨면 핍니다.

안광무처불개화 眼光無處 不開花[눈 빛이 닿지 않는 곳에 꽃이 안 핀다]라. 어떤 이는 춘광무처 불개화 春光無處 不開花[봄볕이 닿지 않는 곳에 꽃이 안 핀다]라 했지만, 요새 겨울에도 꽃피는 곳, 화원 같은 곳이 있는데 그런 꽃은 서리만 맞아도 죽고 폭풍우 만나면 쓰러집니다.

내가 내놓은 이 꽃은 어떠한 서리도, 폭풍우도, 해녀들이 바다 속 깊이 갖고 들어가도 바닷물마저도 적실 수 없는 꽃이요. 바다 속에서도 피는 꽃 한 송이를 제공하니 이 꽃 받아가지고 가서 세세생생世世生生 버리지 말아야 해요.

왜냐하면 집에서 가꾸는 꽃도 만물의 영장靈長인 사람만이 가꿀 수 있지 짐승이 가꿀 줄 압니까? 그러니 화분花盆 깨지면 다른 것으로 갈아서 꽃을 옮겨 심어 다시 가꿀 수 있듯이 이 세계일화인 각자의 자성自性은 이 몸 화분이 깨져도 내생來生에 또 태어나서 그 자성의 꽃을 가꿀 수 있는 그런 화분이 되라 이것입니다.

나는 오늘 이런 화분에 이런 꽃, 세계일화世界一花 한 송이를 심어 드리는 것입니다.

선사는 세 번이나 꽃을 심어 주었음을 확인하신다.

우리 청법대중은 꽃 한 송이씩을 받아갖고 법당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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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우선사

1917년 충청남도 서산군 해미읍 양림리 출생(속명 김재현)

1945년 음력 2월 8일 출가 (29세)

2005년 8월28일 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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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 본래 나무가 없고 (菩提本無樹) 

밝은 거울 또한 받침대 없네 (明鏡亦無臺)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本來無一物) 

어느 곳에 티끌이 일어날까 (何處惹塵埃) 

보리 본무수, 명경역비대, 본래무일물, 하처야진애

이는 마음의 본성인 보리는 나무도 아니고, 깨끗한 거울도 아니며, 본래 아무것도 없으니, 어디에 때나 먼지가 낄 수 있겠느냐

- 육조 혜능  The Sixth Patriarch, Huineng


삼조승찬대사(三祖僧璨大師)의 신심명(信心銘) 1, 2 장

至道無難 (지도무난)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나 唯嫌揀擇 (유혐간택) 오직 간택함을 꺼릴뿐이다. 깨달음의 길, 즉 진리는 결코 어렵거나 힘든 것이 아니다. 다만 무언가를 가려 선택하려는 마음, 분별하고 잣대를 들이대는 마음이 문제일 뿐이다. The p...